JIFF의 추억

전주국제영화제가 시작된 것은 2000년 봄이었다. 그때만 해도 낯선 문화에 시민들의 충격은 작지 않았다. 사실 전통과 보수적인 문화 환경이 여전히 드센(?) 전주에서 가장 현대적인 문화의 상징인 영화 축제의 성공을 확신하는 일은 어려웠다.

 

1회 전주영화제가 개막될 즈음 전주시 고사동 오거리 초입에 작은 비가 세워졌다. 전주영화사를 기억하게 하는 영화비였다.

 

전주는 1940-50년대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영화가 제작되었던 곳이다. 당시 제작되었던 영화는 대부분 흥행에도 성공한 주류 영화였다. 지방에서 주류영화가 제작되는 예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후의 황폐한 환경 속에서도 예술적 열정을 불태웠던 지역 영화인들의 소중한 삶의 기록. 영화비는 50년 단절된 문화사의 고리를 잇는 상징이었다.

 

전주영화제는 영화에 대한 그릇된 상식을 거스르는 ‘대안 영화제’와 디지털 시대를 한발 먼저 앞서 만나는 ‘디지털 영화제’를 내세웠다. 도발적인 주제였다. 시네필들은 환영했으나 시민들은 냉담했다. ‘어렵고 난해한 영화’ ‘그들만의 영화제’에 대한 편견이 냉담을 부추겼다. 그러나 첫 번째 전주영화제는 난산의 고통을 빛나는 가치로 되돌려놓았다.

 

개막작인 홍상수 감독의 ‘오,수정’으로 시작돼 23개국 170여 편의 창을 건너 아시아 인디영화포럼 수상작으로 끝을 맺은 전주영화제는 새로움 그 자체였다. 대안의 통로를 찾아가는 ‘시네마 스케이프’, 세계가 주목하는 디지털 영화의 미래를 펼치는 ‘N-비전’, 독립영화의 축제 ‘아시아 인디영화포럼’이 전주영화제의 중심에 서고, 새로움과 다름을 보여주는 한국영화 장편과 단편이 관객들을 만났다. 동화적 이야기가 기발한 상상력과 만나는 애니메이션과 그 한계와 가능성에 도전하는 애니메이션이 뒤를 잇고 경계를 넘어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맥을 잇는 거장들의 작품이 뒤를 이었다. 심야상영으로 즐기는 SF영화와 저예산으로 제작한 B급 영화들은 한밤중 영화매니아들을 또 얼마나 즐겁게 했던가.

 

많은 영화인들은 사회 참여적 영화와 예술영화, 그 경계의 영화들을 빼어나게 만들어나가는 존 조스트나 존 아캄프라 같은 감독들까지 껴안은 전주영화제의 가능성을 높이 샀다.

 

돌아보면 영화제가 걸어온 길은 험난하지만, 그 가능성의 힘으로 이 지켜온 전주영화제의 역사는 빛난다.

 

어제 17회 전주국제영화제가 개막됐다. 지금, 전주영화제의 철학을 담은 더 새로운 영화 성찬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