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유연성

국회의원들에게 크고 작은 민원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지금은 은퇴한 같은 지역구의 두 국회의원은 민원에 대해 서로 다르게 대응했다. 한 분은 억지 민원이라며 원칙을 앞세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또 다른 분은 민원인이 있는 자리에서 관련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을 쳤다. 전자의 민원인은 선거기간 모든 것을 다해줄 것 같았던 의원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며, 후자의 민원인은 실제 장관과 통화를 한 것인지 상관 없이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두 후보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고, 두 후보가 맞붙었을 때 선거결과로 나타났다.

 

원칙주의 이미지로서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을 따라갈 정치인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누리과정은 한국 사회의 현 상황을 아주 상징적으로 축약해놓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부터 원칙을 말하지만 원칙은 없는 나라. 법을 말하지만 법은 없고, 약속을 말하지만 약속은 없는 나라, 그런 것이 마치 슈퍼 바이러스처럼 전 국민의 의식, 삶 속에 그대로 퍼져나가는 그런 나라, 여기서 누군가는 ‘그래도 나는 원칙과 법과 약속을 말해야겠다’고 외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는가, 그게 내 몫이라면 하겠습니다.”

 

교육감 2기 취임 1주년을 맞아 지난해 본보와 인터뷰에서 김 교육감이 한 말이다.

 

정치인에게 소신과 원칙은 아주 훌륭한 덕목이다. 특히 손해와 손실을 감수하면서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면 더욱 존경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정치인이 많을수록 우리사회가 더 희망적일 것이다. 하지만 전북교육의 현실이 교육감의 원칙과 소신만으로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법과 제도의 불합리성을 떠나 교육감의 소신 때문에 각종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 손실은 교육감 개인을 넘어 전북교육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도교육청이 마련한 전북지역 국회의원 당선자와의 간담회에서도 이런 우려들이 나왔다. 교육은 결국 투자인데 전북은 중앙과 연계문제에서 자꾸만 단절돼 걱정이라거나, 누리과정 예산의 경우 전북교육청이 외롭게 남아 저항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소신과 원칙을 지키면서 유연성도 갖춰야 한다는 게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개인의 소신 보다 공동체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 대의를 위해 소신을 굽히는 것도 정치인으로서 큰 덕목이다. 당장 발등의 불인 누리과정 예산이 김 교육감의 소신과 유연성의 시험대다.

 

김원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