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밤 달 떠오른 광한루원 ‘완월정’ 야외무대에서 시작된 제86회 춘향제 개막 공연을 보면서 스친 생각이었다.
페일언하고, 우선 남원시립국악관현악단(지휘:김선)의 공연부터가 가히 세계적이었다. 특히, 시립어린이 합창단의 “오늘이 오늘이소서”는 밤하늘로 퍼져나가는 그 맑은 음색이 일종의 영가(靈歌)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노래는 짧은 인생에서 언제나 오늘같이 즐거운 날만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불리고 있는 이 지역의 노래였지만, 그 바람과는 달리 임진·정유 양란을 거치면서 사라져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노래였다. 이어진 동락연희단의 ‘소나기’는 그야말로 등줄기를 때리는 시원하고 세찬 소나기 같은 것이었다. 숨가쁘게 휘몰아치는 질풍노도의 설장구에 슬쩍슬쩍 얹히는 중모리, 중중모리 관현악의 선율은 듣는이의 가슴을 조였다 풀었다 했다.
원완철의 청아하고 애절한 대금연주 비류(飛流)와 명창 남해성, 김화자의 수궁가를 비롯한 명인 명창 국악대 향연에 창극 ‘아매도 내사랑아’와 햇님여성국극단의 ‘대춘향전’, 춘향국악대전에까지 이르고보면 새삼 누구라도 “남원이 동편제의 탯자리이자 국악의 성지였지”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지만 국악뿐이 아니다. 창, 가, 무, 록에 다양한 현대음악과 퍼포먼스들이 들끓어 그야말로 공연예술의 폭죽이 정신없이 쏘아올려지는 느낌이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그 공연들이 세대와 세대를 어우르도록 치밀하게 계획되었다는 점이며, 부단히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춘향가 쑥대머리 중 상사몽이나 사랑가는 관현악 반주는 물론 빠른 비트에 록(ROCK)을 결합시켜 절묘한 융합을 시도했고, 김나리와 정가 앙상블 소울지기는 정가(正歌)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내고 있었다. 또한, 남성중창단 팝페라 그룹 T&B와 70·80을 겨냥한 가수 조항조와 발라드 황제로 불리우는 변진섭에 가요와 서양고전음악을 결합시킨 매력적인 여성보컬 사인조 ‘베드걸즈’와 역시 걸그룹 ‘하이디’, 록그룹 ‘갈릭스’, ‘브라스맨’ 그룹과 퓨전국악 ‘헤이야’, 댄싱가요그룹 ‘스테파니’와 신세대 발라드 계열의 ‘노을’, 그리고 김화숙과 현대무용단 사표의 ‘말을 걸’에 인근 광양시의 시립국악단 공연과 중국 염성시 예술단, 러시아 브랸스크민족오케스트라의 공연, 그리고 정말로 접하기 어려운 모스틀리-TNS 오케스트라의 클래식 연주 ‘세기의 사랑가’에 이르기까지 이번 춘향제는 그야말로 시장 이환주와 명창 안숙선의 환상적 콜라보였다. “돌아와 거울앞에 선 누님”처럼 그녀는 춘향아씨의 행원을 위해 스스로 머리 풀어 방성대곡하듯 그 자신은 물론 천하의 예인들을 남원땅으로 불러 유감없이 한 사나흘 놀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서있는 이가 시장 이환주 이다. 이 꼼꼼하고 치밀한 행정가는 “남원은 문화가 답이다”라는 결론을 도출한 다음 실로 굴뚝 없는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고, 이번 춘향제야 말로 그 안숙선, 이환주 콤비의 총체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만찬장에서 송하진 지사는 춘향제는 이제 남원의 것이 아닌 전북의 것이며 대한민국의 것이고, 장차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를 가지고 세계로 나아가도록 적극 후원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밤늦은 시간 공연을 보고 광한루원을 나오면서 이지역의 기업 (주)지엠에프 김호수 대표는 “남원사람이어서 행복하다”는 고백을 했다. 왜 아니겠는가 ! 이 밤의 행복감을 안고 서울로 돌아가면 나 또한 석달 열흘쯤은 안먹어도 배고프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