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약속은 ‘천금과 같아야 한다’고 했다. ‘남아일언중천금’이라고, 남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의 무게와 같은 가치를 지녀야 한다.
어느 날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는데 아이가 울면서 뒤좇아 와 보챘다. 그러자 아내는 급하고 귀찮아 “어서 집에 들어가 있거라, 시장에 다녀오면 돼지를 잡아서 맛있는 고기를 먹도록 해주겠다”고 말했다. 한참이 지나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화들짝 놀랐다.남편인 증자가 칼을 갈며 돼지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증자에게 깊은 생각 없이 불쑥 내던진 말이었음을 실토한다.
증자는 정색을 했다. 아이들에게 대충 거짓말로 둘러대면 그대로 배울 것이 아니냐며 나무랬다. 또 아이가 자신이 속은 줄 알면 장차 부모의 말인들 어찌 믿으려 하겠는가 하고 반문하기도 했다.
결국 증자와 아내는 그날 돼지를 잡아 아이에게 먹였고, 그것으로 약속을 지켰다. 증자가 약속과 믿음에 대해 얼마나 엄중하게 생각했는지를 엿보게 하는 한 대목이다.
허물없는 가족 간의 관계가 이러해야 하건대 사회의 지도층 위치에 있는 공인들의 약속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아 한번 끄집어 낸 얘기다.
지난 7일 오전 10시 전주시장실. 김승수 전주시장, 정헌율 익산시장 등 전주·익산시 관계자 9명이 마주 앉았다. 익산시 춘포면 인근에 들어서는 항공대대 이전과 관련한 전주시의 밀어붙이기 행정에 대해 나름의 유감을 표명하고, 8일로 예정된 사업 착공을 잠시 미뤄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익산시의 요청으로 이뤄진 만남이다. 익산시 공무원들이 그간 몇 차례에 걸쳐 전주시장과의 이런 자리 마련을 요청했으나 번번이 묵살 당하자 급기야 정 시장이 직접 나서 전격적으로 성사된 미팅이기도 하다.
두 시장의 만남 배경이 무엇인지를 서로가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잠시의 어색함에서 정 시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모든 사업은 이해당사자인 주민과 사전협의가 우선되어야 하기에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주민과 같이하는 것이 행정의 몫이 아니겠냐”며 주민들과 공감대 형성 이후의 사업 착공을 정중히 요청했다. 이어 “공사가 강행될 경우 주민과의 물리적 충돌 또한 불가피한 만큼 공사중지 가처분신청 상고가 끝나는 오는 7월말경 까지라도 착공을 미루고 그 사이에 더 많은 대화를 갖자”고 덧붙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김 시장은 “공사 연기를 적극 검토하겠고, 앞으로 주민과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고 결단을 내려줬다.
잠복해 있던 양 지역간에 대립과 갈등의 불씨 뇌관이 일시에 제거되는 벅찬 감동의 순간 이었다.
정 시장 등은 이날 익산으로 되돌아오는 길에서 “초·중·고 졸업 등 학창시절을 익산에서 보내 익산이 사실상의 고향(정읍)인 김 시장이 익산시민들의 간절함을 결코 내팽개치지 않았다. 전주시장을 뛰어 넘어 더 큰 인물로 키워야 한다”며 김 시장을 향해 입에 침이 마를 정도의 극찬을 쏟아냈다.
하지만 8일 오전, 익산시민들에게 참담한 소식 하나가 날아왔다.
전주시가 공사에 전격 착수하면서 익산 춘포 등 마을 주민들과 극단 대치 상황을 벌이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김 시장의 통 큰 결단에 정말 감사·고마워했던 익산시민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식이다. 제대로 된 뒤통수를 맞았다며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공사 연기를 적극 검토해 보겠다’는 김 시장의 어제(7일)의 말은 정녕 울며 보채는 아들이 귀찮아 그냥 둘러댄 증자의 아내 말과 같은 맥락의 사탕발림 이었다는 얘기인가.
문서 작성 등 비록 특별한 형식을 갖추지 않은 구두약속이라도 공인들의 구두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던지는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