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봉분속 주검들에게 “어쩌다가 돌아가셨어요?”하고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때마다 단방에 돌아오는 대답은 “묻지마! 세상에 이유없이, 사연없이 죽은 주검이 어디있어!” 이 한 마디가 뇌리를 울린다.
그래, 맞다. 세상에 원인이 없고 이유가 없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뻔 한 것을 알고자 하는 내가 어리석다. 그런데 말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아무런 이유도 없는 살상 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 이 무슨 변괴란 말인가!
예전 시골 마을에는 머리에 꽃을 꽂고 맨발로 히죽이죽 웃고 다니던 여인들이 더러 있었다. 기압이 낮아져 비가 오는 날이면 더 히죽거리며 정말 미친 듯이 돌아다니곤 했다. 우리는 그런 여인을 ‘미친여자’라고 불렀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미쳤다고 했던 그분들은 엔도르핀의 과대생성으로 인한 충만한 희열을 억제하지 못하는 조절장애 정도로만 여겨진다. 자기 스스로 기쁨에 겨워했을 뿐 남에게 위해를 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의 정신적 이상자와는 확연히 다르다
최근에 와서 ‘묻지마’ 범죄 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고 있다.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범죄자 대부분이 정신적 이상 현상을 가진 자로 분류되고 있다. 스스로 마음을 침전시키지 못하고 정제하지 못한 정신적 이상을 무기삼아 사회적 약자를 골라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범죄자들이 상대적으로 약자를 골라 대상으로 삼는 것, 이것은 정신적 이상 현상을 가진 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어떻게 강자와 약자를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부분은 다시 한 번 정밀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눈만 뜨면 접하는 정신 이상자들의 묻지마 범행! 반복적으로 자꾸 접하다보니 남의 일 같지 않고 이제 피부에 소름이 돋도록 체감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 피해자 중의 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맹목적인 공격! 그것도 상대적 약자만 골라 공격하는 범죄! 이것은 사회를 불안의 도가니로 몰고가는 심각한 범죄다. 이 범죄는 예고가 없고 대상이 불특정하여 예방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 책임이나 떠넘기며 수수방관 하고 있을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이 ‘묻지마’ 범죄가 두려워 대문밖 나서기를 꺼린다면 정말 ‘헬 조선’이라는 오명을 덮어쓰고 말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재발 방지를 위해 치안의 그물망을 더욱 촘촘히 치고 시민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자구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경로든 정신적 이상자들을 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위험 요소를 지닌 자들을 사회와 격리시키는 제도적 장치도 빠른 시일 내 마련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