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의 땅 이름은 통일신라의 경덕왕 16년에 예부터 전해오던 고유한 땅이름을 당나라식 2자 한자로 통일 표기함으로써 개악(改惡)되고 말았지. 토박이 땅이름을 소리나 뜻으로 한자식 표기를 해 고유성과 순수성을 잃게 되어버렸어.”
반세기 동안 고창 향토사를 조사·발굴해온 이기화(82) 고창지역학연구소장이 향토대서사시집 <고창(高敞)> (도서출판 기역)을 펴냈다. 고창(高敞)>
우리가 거둔 모든 문화는 향토적인 것에서부터 승화됐다는 그는 오거리당산제 재연과 고창읍성 축성연대 규명, 동리 신재효 선생 연구 등 고창 향토사 연구에 앞장서왔다. 홀로 사적을 다니면서 천주교 순교터를 새로 발견하고 전봉준 장군의 태생지가 고창임을 규명해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역사의 주인공은 사람이라는 역사의식 아래 지난 1980년대부터 30년 동안 고창의 성씨를 조사, <고창성씨책> 을 발간했던 그가 이번에는 땅에 집중했다. 이 소장은 땅은 우리들의 생활터전이자 미래지향적인 공간으로 우리들의 선영(先塋)이 있고 역사, 지리, 언어, 민족 등을 통해 이룩한 문화가 숨 쉬고 있다고 말한다. 고창성씨책>
본래 고창은 백제 때 모량부리(毛良夫里)로 불렸다. 모양은 산남수복(山南水北)의 양지바른 보리밭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재 고창으로 바뀌면서 보릿고을을 상징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따라서 책은 상도솔(上兜率) 하도솔(下兜率) 월운방(月雲坊) 오뱅이골(五方源) 등 임진왜란 이전의 전통지명 100곳을 선정해 지명과 땅에 얽힌 역사와 고유성을 찾아간다.
그리고 이를 기록이 아닌 서사시로 읊는다. 서사시는 주관적 감성에 주안을 둔 서정시와 달리 객관적 사실과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섣불리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지명은 100곳이지만 풀어낸 시는 227편에 달한다. ‘개갑장터의 유래’편은 그가 발견해 지금은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받은 천주교 신자 최여겸(1762-1801)의 순교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의향(義鄕)의 고창’편에서는 백제부터 고려, 조선 시대 인물들의 충절의식과 임진·정유왜란 당시의 의병창의, 동학농민혁명, 구한말 의병항쟁, 민족사학 고창고보 설립 등 그가 고창을 의향으로 정립하는 역사적 배경에 대해 풀어낸다.
전라북도 문화재 전문위원과 전국문화원연합회 부회장, 고창문화원 원장을 지낸 그는 현재 고창지역학연구소장과 국산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전북협의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북문인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