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와 남북관계

브렉시트 교훈삼아 북한과의 대화협상…경중·완급조절 필요

▲ 이재호 동신대 교수·정치학

아직은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이다. 세계가 요동을 치고 있는데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이라니, 조금 성급한 감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곧 부딪히게 될 현안이어서 미리 한 번쯤 짚고 갔으면 한다.

 

원래 EU는 국제정치학의 통합이론 중 이른바 기능주의(Functionalism)이론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기능주의란 게 뭔가. 국가 또는 지역 간에 통합하려면 골치 아픈 정치적, 이념적 분야는 잠시 미뤄두고, 쉽고 비정치적인(기능적인) 분야부터 다뤄나가자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기후·질병·환경·우편·교통·통상 같은 분야에서 교류, 협력함으로써 신뢰를 쌓고, 이를 토대로 정치적 통합까지 가는 게 현실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EU가 그랬다. 1950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출범해 1958년 유럽경제공동체(EEC), 1967년 유럽공동체(EC)를 거쳐 1993년 정치적 통합까지 이룬 지금의 EU로 탄생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통합이 속도를 내면 기능주의도 덩달아 각광을 받았고 반대로 지지부진하면 관심이 시들해지곤 했다. 이론과 현실이 이렇게 함께 움직인 것도 드문 일이었다. 기능주의는 정치학자 데이비드 미트라니(영국 1888년~1975년)가 창시자 격인데 지금도 그 적합성을 인정받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 사회부터가 남북문제에 관한 한 큰 줄기는 기능주의다. 진보든 보수든 “쉬운 문제부터 풀어 신뢰를 쌓은 후 통일로 가자”는 데 이견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의원 때(2007년 4월) 내놓은 평화정착→경제통일→정치통일의 3단계 통일론도 전형적인 기능주의다. 박 대통령은 아예 EU를 모델로 삼았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그런 EU가 브렉시트로 직격탄을 맞았고, 몇몇 회원국들의 추가 탈퇴 위험에 노출돼 있다면 EU의 이론적 근간이 돼온 기능주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정치적인 분야에서 아무리 교류 협력을 늘려도 큰 틀-예컨대 세계화 속-에서 생성된 개별국가의 좌절과 분노를 이겨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EU를 EU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60년의 세월이 브렉시트 한 방에 훅하고 날아 가버린다면, 그 과정에서 콘크리트처럼 굳게 형성됐다고 믿었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도 사라지고 통합의 상대가 졸지에 반목과 적대의 상대가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기능주의의 본질까지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능주의도 정치적인 것들의 중요성을 고려하는 신(新)기능주의로 더 정교해진 지 오래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대한 묻지마 식의 지원이나 “어떤 경우에도 대화는 지속되어야 한다”고 믿는 대화 우선론자도 같은 물음에 직면할 수 있다. 그들의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대북 정책으로써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화를 하더라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대화해야 한다. 감당할 수 없는 대화를 하게 되면 종국에는 남북 어느 한 쪽, 또는 양쪽이 브렉시트처럼 기존의 협의체제를 박차고 나올 수 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지가 엊그제여서, 대화 재개가 북핵 용인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농후한 게 현실이다.

 

대화를 하더라도 경중(輕重)과 완급(緩急)을 가려가면서 해야 한다. 브렉시트의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