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소리전당 기획공연 앙상블 디토] 덜 차지하고 덜 드러낼 줄 아는 혁명가들

▲ 지난 23일 소리전당 모악당에서 앙상블 디토가 연주하고 있다. 사진 제공=유백영 작가

‘혁명가들’. 온유 안에 단단함을 감춘 영혼, 용재 오닐의 비올라로 시작하여 한 줌 머리카락을 날리는 첼리스트 혁명군에게 전주는 완전히 점령당했다.

 

‘앙상블 디토 시즌 10 리사이틀’(지난 23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은 만석이었다. 커플보다 여성들이 더 많아 보였다. 어떤 남자가 이들 경쟁자 앞에 여인을 모시고 온단 말인가. 클래식 아이돌의 초이스치고는 모두 무거운 곡이었다. 디토의 10주년을 입증하면서, ‘우리 이제 애들이 아니야’ 하는 선곡이랄까? 카를로 제수알도의 ‘나를 고통 속에 죽게 내버려 두오’가 인트로다. 혁명가의 활은 네 줄 현 안에 자리한 고통의 한 가운데를 지난다. 연민 사이. 잠깐의 암전이 또 다른 긴장을 예고하는.

 

절집에 온 듯. 기도하며 들어야 하는 연주. 이 친구들 덜 차지하고 덜 드러낼 줄 안다. 아르보 패르트가 작곡한 단순한 멜로디 라 음의 끝없는 변주가 계속되는 ‘거울 속의 거울’은 청중들의 달뜬 마음을 확실히 가라앉혔다. 오른손이 두드리는 낮은 음 사이 왼손이 짚는 둔중함 속, 바이올린 소리가 울음처럼 번져가고 있었다. 거울이 없는 사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 거기 있었다.

 

누구는 절대 고독 혹은 상실한 사랑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으리라. 당신 속의 나, 내 속의 당신을 표현하는 미니멀리즘 뒤에 오는 표현주의 음악인 야나체크의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 규범화된 외양을 따르되 자신만의 컬러를 보여주어야 하는 이 혁명의 시간은 그들이 이제 아이돌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 이들이 보여준 감성과 격렬한 선율은 재능과 피나는 연습을 넘어 사유의 결과라 믿고 싶어진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이끈 혁명가들에 대한 오마주의 자리인데 베토벤이 빠질 수 없다. ‘귀 없는 귀’라는 불행에 굴복하지 않던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대공’을 연주하는 스테판 피 재키브의 바이올린은 진중하고 피아노를 두드리는 스티븐 린은 단정하다. 첼리스트 마이클 니콜라스의 보면대 악보가 넘어가지 않자 관중들은 긴장했지만, 이 친구는 여유로웠다. 완강한 육체에서 나오는 힘을 컨트롤하는 첼리스트를 방해하는 것은 쓸려나온 앞머리였다. 젊은 청년들이 활을 내려놓고 피치카토로 현을 튕길 때의 온유와 부드러움이라니. 그렇다. 저마다의 소리를 내면서 또 죽이면서 혁명은 진행되는 것이다. 저 청년들이 가지는 영적 예의는 어디서 나올까?

▲ 신귀백 영화평론가

콘서트의 묘미는 메인 연주가 끝나고 청중들의 박수에 따른 앙코르에 있지 않던가. 사실 음악 혁명가들에 대한 오마주이다보니 다소 무겁고 깊었던 측면도 있었다. 그래도 커튼콜이 다섯 번 이어지자 청년들은 한 곡 한 곡, 결국 다섯 곡을 연주했다. 박수에 박수 뒤, 쑥스럽게 웃는 그들의 마지막 선물은 ‘시네마 천국’이었다. 혁명이 끝난 후 꽃길을 걷는 듯한 순간. 천국이 끝나고 눈치 빠른 전주의 여심은 긴 줄로 소리전당 로비를 가득 채웠다. 전주라는 비단에 수를 놓은 청년들은 핏이 좁은 양복바지를 후딱 벗어던지고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시디 재킷에 사인을 하고 있었다. 거참, 질투보다는 예뻐 죽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