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가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 교수가 청중들에게 창업에 중요한 세 가지를 순서대로 들어보라고 물었다. 누군가 “입지(立地)요!” 대답했다. 두 번째 세 번째로는 판매 아이템, 기술, 종업원, 자본 등 하나같이 선후를 가리기 쉽지 않은 답변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잠시 소란이 가라앉은 후 교수는 웃으면서 두 번째 중요한 것도 입지요, 세 번째 중요한 것도 입지라는 것이다.
창업에 있어 입지가 언제나 알파요 오메가는 아닐 것이다. 요즘은 쇼핑몰이 산속에 들어서 성업하는 세상이다. 그렇지만 보편적으로 입지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입지 측면에서 보면 전국의 광역자치단체들도 개인 점포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가 경제 개발 전략에 부합하는 곳에 있는 지역이 발전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 않겠는가? 물론 점포와는 달리 지역은 국가의 입지 전략에 맞추어 이리저리 옮겨 다닐 수는 없다. 주어진 위치에서, 여건 변화에 맞추어 달라지는 전략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전북은 조선 오백 년은 물론이고 일본강점기에도 우리나라 산업 생산의 중심 지역이었다. 전주는 한양, 평양 등과 함께 5대 도시의 위상을 누렸다. 1960년대 들어 산업화가 본격 시작되고 미국과 일본이 주요 협력대상이 되면서 상황은 크게 변했다.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들여오고, 그렇게 만든 제품들을 이들 나라에 수출하면서 우리 경제는 커갔다. 이들 동쪽 해양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한 경제 발전 전략은 한반도상의 서쪽에 있는 전북의 전략적 중요성을 한참 떨어뜨렸다. 전북과 전주의 경제·정치적 위상 하락을 설명하는 많은 요인이 있겠다. 그렇지만 산업 입지상의 불리가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화의 실마리가 열렸다. 중국과의 수교를 계기로 우리는 동쪽 해양과 서쪽 대륙의 균형 협력시대에 접어들었다. 전북은 중국과 좁은 서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대륙과의 협력이 확대될수록 전북의 교류 입지로서의 중요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의 협력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중 교역량이 대미, 대일 교역량을 합친 것보다 많아진 지 오래다. 획기적인 환경 변화는 전북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전북의 모든 분야가 새로운 환경, 새로운 기회와 맞닿아 있다. 새만금 사업은 많이 지체되고 있다. 사업이 신속하게 진행되었다면 새만금은 식량기지로 완결되었을 것이다. 지금 중국은 새만금 사업의 핵심 변수의 하나가 되었다.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그간의 애로들은 어쩌면 전북에 더 나은 기회를 주려는 하늘의 안배일 수도 있겠다.
변화는 전북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되었지만 이를 온전히 지역발전으로 이어가는 노력은 전북의 몫이다. 새만금은 전북만의 대륙 협력 창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항, 철도, 도로로 전국과 연결하여 새만금을 나라 전체의 협력 관문으로 만들어 나가야겠다.
전북은 변화의 흐름을 비교적 잘 타고 있다. 민선 6기 도정이 추진하고 있는 미래 산업 육성, 기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 토탈 관광 등도 점차 그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어려운 현실이 바로 나아지지는 않고 있지만 미래를 위한 토대는 다져지고 있다. 조급해 하지 말고 조금 더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 전북의 미래는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