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비참한 삶을 다룬 영화 ‘귀향’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 12월 28일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귀향’이 입소문을 타면서 한달새 누적관객 358만여명을 기록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피맺힌 증언을 토대로 7만5000여명에 달하는 재정 후원자들에 의해 14년 만에 완성된 영화 ‘귀향’은 일본군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고발한 문화적 기록물이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에 20만 명에 달하는 소녀들이 끌려갔고 살아 돌아온 238명만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등록되었으며 현재는 단 41명이 생존해 있다.
이들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기록과 일본군의 전시·전후 위안소 운영 사료, 위안부 피해자 조사자료, 피해자 치료기록, 피해자 지원과 인권회복 운동 자료 등을 망라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이 지난 5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 신청을 마쳤다. 한국과 일본 중국 네덜란드 타이완 인도네시아 필리핀 동티모르 등 8개국 14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일본군 위안부관련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6일 유네스코 본부에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라는 이름으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 2744건을 전달했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국책사업같이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 조윤선·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이 여가부 인권진흥실 안에 유네스코사업 추진단을 만들어 발벗고 나섰다. 김희정 장관은 지난해 3월 제59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UN CSW) 전체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 우리 정부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여성가족부의 유네스코사업 추진단이 빠지고 위안부 기록물 등재사업 지원을 위한 예산 4억4000만원은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내년 예산안에는 아예 편성조차 하지 않았다.
반면 유네스코 운영자금의 50%를 지원하는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에 강한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아베 총리는 한·일 합의 이후에도 공식 자리에서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전쟁범죄가 아니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고 일본 외무상은 “우리가 잃은 것은 10억 엔뿐이다”는 조롱섞인 망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반박 한마디 못한 채 되레 피해 할머니와 국민들 설득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