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 배우자 의전

지난 1999년 도청 간부공무원 부인 모임이 구설에 오른 적이 있었다. 당시 친목 도모와 자선 봉사활동 등을 명목으로 주요 국·과장급 이상 간부 공무원 부인들이 매월 모임을 가져왔다. 하지만 모임 후에 전주시내 유명 옷가게로 쇼핑에 나서면서 잡음이 불거졌다. 도지사 사모님이 맘에 들어 하는 옷이 있으면 다음날 관사로 배송을 해야하는데 당시에도 옷값이 수백만원을 호가하기에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 이에 몇몇 공무원 부인들은 모임에서 빠졌고 남편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전전긍긍거려야 했다. 그러다 당시 검찰총장 부인의 옷로비사건이 터지면서 도청 공무원 부인들의 옷 쇼핑도 중단됐다.

 

민선자치 이후 단체장 부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단체장 부인들이 다음 선거를 의식해 광폭 내조 행보에 나서면서 사모님 수행에 공무원들이 동원되고 단체장 못지않은 의전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수행이나 의전을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심신은 고달프지만 잘만하면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는 만큼 군말없이 성심성의껏 보필한다. 실제 전북도나 전주시에서는 사모님 수행을 담당했던 여성 공무원이 고속 승진하는 사례도 있었다.

 

여기에 극히 일부이지만 단체장 부인이 남편의 직위를 이용, 승진 인사와 공사 수주 등 각종 이권에 까지 개입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민선 초기 정읍시에선 시장부인이 승진을 대가로 공무원 6명으로부터 8000만원을 받았다가 구속됐다. 당시 돈을 준 공무원 가운데 실제 승진한 사람도 있었지만 시장인 남편은 모르는 일이라고 해서 사법처리를 면했다. 민선 5기 때에는 무주군수 부인이 공사수주를 대가로 업자로부터 3000만원을 받았다가 구속돼 실형을 살기도 했다.

 

단체장 배우자들의 일탈행위를 보다 못한 행정자치부에서 지난 6월초 ‘지방자치단체장 배우자의 사적행위에 대한 지자체 준수사항’을 마련해 자치단체에 통보했다. 고창 출신으로 전북도 행정부지사를 지낸 심덕섭 행자부 지방행정실장이 마련한 배우자 준수사항을 보면 인사 개입이나 사적 해외출장 경비지원 금지, 공용차량 사적이용 금지, 사적인 활동에 공무원 의전활동 금지 등을 명시해 놓고 있다. 여기에 바자회와 봉사활동 등 단체장 배우자의 사적인 행사에 지자체 간부나 간부의 배우자 등을 동원하는 것도 금지했다.

 

앞서 김승수 전주시장은 민선6기 취임 초에 국장급 간부공무원 부인 모임인 ‘명사모’ 활동을 중단시켰고 황정수 무주군수도 군청공무원의 부인 수행을 금지시켰다. 배우자 준수사항 제정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목민관으로서 단체장의 의지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