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집 - 박성숙

높다란 아파트 창의 불빛

 

하나씩 둘씩 꺼져가는 밤

 

긴 그림자에 가위눌리어

 

다소곳 낮은 기와집에서는

 

꺼지지 않고 있는 불빛이 있다

 

아직도 잠들지 않은 이들

 

하룻일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는가

 

밥상 물린 남편에게 무를 깎아주며

 

배보다 무가 더 좋다고

 

뒤꼍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며 웃는

 

그리고 자리에 들기 전에

 

창가에 다가가 별에게

 

“안녕” 하고 잠드는 아내

 

이런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는

 

밤의 고요가 포근한 날개로 날아와

 

그 날개 살풋 놓고 가리

 

△시를 읽는 동안 맑은 수채화 한 점이 확 떠오른다. 이 그림을 어디서 보았지? 부모님 살아 계실 적, 내 어릴 적 그림이다. 지금, 나는 어쩌다 그림 밖에서 서성이는가? 무 한 쪽이면 시원하고 사근사근하게 완성될 저 고졸한 풍경을 나는 어쩌다 잃었는가? 화들짝 정신이 들어 고요한 집 대문 앞에 선다. 김제김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