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맣게 잊혔지만, 20년 전 마이클 잭슨이 무주 리조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전북을 전격 방문한 마이클 잭슨은 무주리조트와 새만금간척지 주변을 둘러보았으며, 무주리조트 투자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마이클 잭슨은 이듬해에도 한국을 찾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다시 무주리조트를 찾아 1억 달러 정도의 투자 양해각서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그 후 투자 사항은 유야무야 됐으나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남긴 뒷이야기는 한동안 지역사회의 화젯거리였다.
마이클 잭슨의 전북 방문은 그와 상당한 친분 관계가 있었던 유종근 당시 전북도지사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유 지사는 마이클 잭슨 외에도 알왈리드 사우디 왕자·조지 소로스 등 국제적인 금융거물들과 DJ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1997년 대선기간 중 DJ의 경제외교통으로 활약했다. 김대중 국민의정부 출범 후에는 대통령 경제고문을 맡아 국내외를 넘나드는 광폭 행보를 이어가며 경제계 실세로 통했다.
외환위기 극복의 전면에서 활약하며 전국적인 지명도를 높였던 유 지사는 그 여세를 몰아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경선 레이스 한 달여만에 수뢰 혐의로 구속되며 날개가 꺾였다. 도지사 신분으로 구속된 뒤 도지사 임기만료 직전 보석으로 풀려나 가까스로 이임식을 치렀으나 그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5년형을 받아 거의 만기에 이르러서야 사면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됐다. 두 차례의 도지사를 역임하고, 중앙 정부의 경제실세로 통했던 그의 존재는 전북에서도 이미 잊혀졌다.
그런 그가 지난 4·13 총선에 도전했다. ‘나라 경제를 살렸습니다, 전주경제도 살리겠습니다’가 그의 캐치프레이즈였다. 도민들에게 받은 많은 사랑을 빚으로 여겨 마지막 봉사로 보답하겠다는 다짐도 곁들였다. 그러나 결과는 낙선이었다. 5% 득표로 4위였다. 그 자신 도지사 때 도청 국장으로 있었던 새누리당 전희재 후보의 득표에도 못 미쳤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유 전 지사의 총선 출마를 의아하게 여겼다.
물론 캐치프레이즈 같은 의지와 사명감이 있었을 테고, 나름 당선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7년간 도지사 시절의 관계망과 인지도, 경제분야의 전문성, 경륜 등을 유권자들이 알아줄 것으로 기대했음직하다. 1995년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시절에 도지사 선거에 뛰어들어 당선의 영예를 맛보았던 그로서는 더 쉬운 선거로 여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소속의 한계, 전과의 낙인, 지역과의 친밀성, 후보 개인의 친화력 등을 따지는 유권자의 마음과 그는 너무 먼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도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데 대해 유 전 지사는 결코 서운해 할 자격이 없다. 도지사를 퇴임하자마자 곧바로 짐을 싸서 서울로 터전을 옮겼다. 수감 때야 어쩔 수 없더라도 이후에도 지역과의 유대를 사실상 끊었다. 도지사 재직시절 해외투자유치 전도사라는 별명까지 얻었으나 외자유치에 목말라 하는 전북에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다.
한 때 대선 후보 반열에 올랐던 그의 정치적 재기는 이제 어려울 것 같다. 많은 나이도 그렇지만, 총선 득표 결과가 그렇게 말해준다. 새로 부활한 민선 단체장 시대를 열고, 도지사 출신으로 대권에 도전했던 분의 정치적 재기 모색과 퇴장이 어설프기만 한 것 같아 씁쓸하고 한편으로 안타깝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후보경선출마 선언 당시 연설에 유 전 지사의 저서를 인용했다. “오늘 아침에 저는 유종근 전북지사가 지으신 ‘유종근의 신 국가론’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신뢰, 협동이라는 이 사회적 자본을 한국이 제대로 구축 하느냐 못 하느냐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있다. 앞으로 사회적 시대의 생산성은 생산요소의 투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혁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토대가 되는 사회적 신뢰를 어떻게 구축해가느냐에 달려있다.’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가 쓰여 있어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
유 전 지사의 지론을 높이 평가했던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에서 평생을 살 생각으로 봉하마을로 귀향했다. 유 전 지사는 도지사를 역임한 후 전북을 떠났다. ‘신 한국론’의 저자와 독자간 누가 더 사회적 신뢰를 실천했는지 보여준 단면이다. 국회의원만이 국가와 지역발전에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 전 지사의 국회의원 낙선변이 들리지 않아 향후 거취를 알 지 못한다. 주민들 곁에서 작은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도백으로 남는 게 기본적인 사회적 신뢰가 아닐까. 유 전 지사의 바통을 이은 강현욱 전 지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