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앞 ‘대학로’에 위기가 찾아왔다. 상권 위주의 대학로로 인해 문화공간의 결핍이 문제로 제기된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지만, 이제는 그나마 상권조차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상권과 문화 모두가 무너진 대학로.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다. 대학로의 위기와 과제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상권위주 대학로…학생들 설 자리 없어
‘전북대 구정문’이라고 불리는 전북대학교의 대학로는 전주지역의 대표적인 ‘유흥가’이다. 밀집된 골목에는 술집과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문화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문화를 갈망하는 학생들은 상인들과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구정문 앞 공간에서 공연을 하는 학생들에 대해 시끄럽다며 민원을 제기하는 상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3년 전 한 공연동아리는 구청으로부터 “다시 구정문에서 공연을 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라는 최후통첩까지 받았다. 대학생이, 대학로에서 쫓겨난 것이다.
△대학상권 쇠퇴…상인연합회 출범과 ‘전대로 행사’ 개최
그러나 상권의 번성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전주 서부지역에 신시가지가 들어서며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대학로’라는 이름에 걸맞는 별다른 특색이 없는 대학로는 유흥가로서의 경쟁이 되지 못했다. 상황이 달라지자 대학로의 상권과 문화를 모두 살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등장했다.
지난해 1월, 전북대 구정문 인근 상인들로 이뤄진 ‘전북대 대학로 상인연합회’의 출범 역시 대학로 활성화를 위한 시도 중 하나였다. 상인연합회의 기본적인 목적은 상권의 회복에 있지만, 대학로 상권의 상인회로서 대학로 문화조성에도 힘을 쓸 것을 협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0월에는 공동체 문화회복과 새로운 지역문화 활성화를 목적으로 하는 ‘제1회 전대로 한마음문화 축제’를 전북대 구정문 앞에서 진행하기도 했다.
△벽화부터 프리마켓까지…대학로 조성 위해 학생들 나서기도
그런가 하면 대학로 환경조성을 위해 직접 나선 학생들도 있다. 대학로 환경조성팀 ‘도란도담’이다. 전북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이들은 지저분해진 대학로를 쾌적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건전한 대학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3년도부터 다양한 활동들을 해 왔다. 특히 지난 2014년에 진행한 ‘벽화그리기’가 대표적이다. 지저분한 거리에 벽화를 그려 넣으면 대학로를 생동감 있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깔끔히 벽화가 그려진 거리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들은 수준 높은 벽화를 그리기 위해 미대생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지역단체와 기업으로부터 기금 및 벽화재료를 지원받는 등 수 개월간 다방면의 노력을 거쳐 수준 높은 벽화를 만들어냈다.
한편 도란도담은 이 뿐만 아니라 학생중심의 대학로 문화를 조성하고자 프리마켓을 운영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다.
△소통·이해·협조 부족과 일부 이기심에 성과는 ‘글쎄…’
지난해 10월 열렸던 ‘전대로 한마음 문화축제’는 그 취지 및 기대와 달리 아쉽게 많은 시행착오를 남기며 마무리됐다.
행사의 홍보팀에서 활동한 박승훈 씨(전북대 사학과)는 “상인들과 학생들이 함께 행사를 기획하고, 그 과정에서 학교의 총장님도 관심을 갖는 등 당사자들 간에 취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행사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상인들의 협조부족으로 인해 행사가 작아지거나 재대로 진행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대학로 활성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확대가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상기하게 된 점도 있다”고 한계를 꼬집었다.
실제로 해당 행사 주최 측은 행사기간동안 차량통행을 막고 대규모 퍼레이드를 기획하기도 했지만 일부 상인들의 비협조로 인해 상당 부분을 축소하거나 취소했다.
도란도담팀의 벽화 역시 수모를 겪으며 문제의식 부족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일부 상인들이 벽화 위에 가게 홍보 현수막을 걸어두거나 벽화가 그려진 담벼락에 쓰레기를 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벽화 완성 직후 버려진 쓰레기의 양이 줄었다는 환경미화원의 증언이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아 무색하게 된 것이다.
도란도담의 팀장을 맡았던 김민준 씨(전북대 도시공학과)는 “많은 학생들이 힘을 합쳐 공들여 그려 넣은 벽화인데 결국 해당 거리가 처음과 똑같아져 그림이 아깝다는 생각조차 든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또 “결국 학생들이 무언가를 조성하더라도, 상인들의 관심과 관리 없이는 의미가 지속되기 힘든데 이 점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것 같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화와 상생, 아젠다 형성으로 위기 극복해야
비단 상인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학로에 대한 대학생들의 수요와 니즈가 소비적인 문화에 머물러있는 것 역시 큰 문제이다. 따라서 대학로에 문화 공간 및 대학로만의 특색 있는 콘텐츠를 유치하기 위한 학생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고민이 필요하다.
또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에게는 장기적인 안목이 요구된다. 상권의 회복을 위해서는 대학로가 ‘찾고 싶은’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순간의 이익을 위해 학생들이 기껏 조성해 놓은 벽화에 현수막을 걸거나 거리 활성화를 위해 열린 행사에 협조하지 않는 행동 등은 결국 대학로 쇠퇴의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대학로는 학생들과 여러 이해당사자들이 함께 공감하고 소통해야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 그 숙명이다. 조화 또는 쇠퇴, 이제 선택을 할 때이다.
● 먹고 마시고…대학로는 유흥거리?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싶은 오늘, 한국의 도시에 살고 있는 당신이라면 함께 술을 마셔줄 친구만 고민하면 될 뿐, 장소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어디에서든, 가장 가까운 대학교 앞으로만 간다면 술집은 즐비하기 때문이다.
고등교육법상 공시대상인 우리나라 대학교의 수는 407개. 그러나 이렇다할 문화가 조성된 대학로를 가진 학교는 전무하다. 가장 유명한 예술대학으로 알려진 홍익대학교 대학로의 경우 거리공연이나 극단공연 등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이 곳 역시 음주문화가 주류를 이룬다.
물론 타국의 대학교 앞에도 술집과 상권은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 및 유럽의 여러 선진국의 경우 주로 서점이나 음식점, 생필품을 구비할 수 있는 Mall 정도가 대부분이고 술집의 경우 간단한 음주가 가능한 Pub이 몇 군데 위치해 있을 뿐 술집이 비정상적으로 밀집해 있지는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단순한 음주문화 뿐만 아니라 대학과 지역 간의 연관성이나 특색 또한 부족하다. 이를테면, 패션과 관련된 대학의 경우 뉴욕이 있는 동부 쪽이 유명하고 영화와 관련된 대학은 할리우드가 있는 서부 쪽이 유명한 미국 같은 대학 분위기가 국내에는 형성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1차적으로 대학이 들어설 당시의 환경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거점 국립대학 및 수도권 주요 대학의 경우 대부분 광복 직후인 1946년에서 1950년대 사이에 개교되었고, 광복 직후와 6.25 전쟁 전후 국가재건 분위기에서 인재를 키우기 위해 절실했던 대학이 문화·환경적인 부분까지 고려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대학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과 교육제도의 문제 역시 대학로의 유흥가화에 한 몫을 했다. 입시과열이 심각한 한국에서는 대학을 답답한 교육제도로부터의 해방으로 보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대학을 더 나은 기회를 위한 교육기관으로 보기 보다는 취업을 위한 관문으로 여기는 풍조도 더해져 대학로가 생산적인 공간이 아닌 목적없는 소비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대학로의 변화는 문화공간의 조성과 같은 물리적인 정책뿐만 아니라, 인식개선과 교육제도 변화를 통한 궁극적인 해결책이 병행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대학로가 지난 70여 년 간 서서히 만들어졌듯이, 그 변화와 개선의 시간 역시 결코 짧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