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수의 귀환

얼음장수 아저씨가 땀을 뻘뻘 흘리며 빙수기를 힘 있게 돌리면 ‘드르륵 드르륵 ’ 가늘게 갈려나오는 얼음. 그릇위로 얼음 가루가 소복이 쌓이면 달콤한 시럽과 잘 삶아진 팥덩어리가 얹히고 찰떡이 놓여졌다. 3-4분 만에 완성되는 팥빙수 한 그릇. 입안으로 스르르 녹아들던 얼음가루의 맛은 얼마나 달콤했던가.

 

마음씨 좋은 얼음장수 아저씨가 만들어주었던 전통팥빙수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 대신 현대식 인테리어의 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들어내는 알록달록 현란한 색깔의 온갖 과일과 젤리가 얹혀진 ‘퓨전 빙수’가 그 자리에 놓였다.

 

빙수는 이제 여름에만 찾는 먹거리가 아니다. 빙수의 종류도 다양해져 더 이상 팥빙수는 빙수의 대명사가 되지 못한다. 팥빙수, 과일 빙수, 쟁반 빙수, 눈꽃 빙수……. 모양도 다양하고, 동원되는 재료도 많다. 큼지막한 유리그릇에 담겨져 나오는 빙수의 양도 그렇지만 빙수의 고유한 맛도 달라졌다.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스스로 녹아내렸던 얼음가루 빙수는 이제 옛말이다. 빙수 마니아들의 말을 빌리자면 오늘날 인기 있는 빙수의 특징은 얼음 가루가 아닌 얼음 조각이다. 얼음과 결합하는 재료도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각양각색의 과일 조각이 동원되는 것은 공통된 기본. 팥빙수조차도 팥과 과일의 경계가 없다. 이쯤 되면 팥빙수의 놀라운 변신이다.

 

그런데 사전을 찾아보니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얼음을 갈아 삶은 팥을 넣어 만든’ 팥빙수의 유래다. 여러 가지 설중에서도 ‘기원전 3000년경 중국에서 눈이나 얼음에 꿀과 과일즙을 섞어 먹은 것’이 가장 오래된 유래다. 기원전 300년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점령할 때 만들어 먹었다는 설과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카이사르가 알프스에서 가져온 얼음과 눈으로 술과 우유를 차게 해서 마셨다는 설도 더해진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에는 베이징에서 즐겨 먹던 프로즌 밀크(frozen milk)의 제조법을 베네치아로 가져가 전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 서빙고(西氷庫)의 얼음을 관원(官員)들에게 나누어 주자 얼음을 받은 관원들이 이것을 잘게 부수어 화채 등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유래를 보니 오늘날 다양하게 분화된 빙수가 오히려 빙수의 원형에 가깝다. 더구나 팥빙수는 잘게 부순 얼음 위에 차게 식힌 단팥을 얹어 먹는 일본음식이 일제강점기 때 전해진 것이란다. 이쯤 되면 팥빙수의 변신은 빙수의 귀환이다.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