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에서 마루 닦고 빨래하며 종처럼 살아온 남편이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시키는 대로 일을 안한다’며 정신지체 장애인 부부를 때려 남편을 숨지게 한 50대 마을 주민이 경찰에 붙잡혔다.
임실경찰서는 지난 31일 말을 듣지 않는다며 지적장애인 부부를 둔기로 때려 남편을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 등)로 마을 주민 이모 씨(56)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29일 오후 9시께 임실군 성수면 도인리 자신의 주택에서 지적장애인 부부 A 씨(55·장애는 있지만 공식 판정받은 바 없음)와 B 씨(44·지적장애 4급)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둔기로 온몸을 때려 A 씨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 당일 저녁 이 씨는 “다슬기를 잡아왔으니 우리 집에 모여 소주 한 잔 하자”며 지적장애인 부부를 불렀다. 술을 마시다 취기에 오른 이 씨는 “평소 시킨 일을 안 하고 말도 안 듣는다”며 자신의 나무 지팡이로 A 씨와 B 씨를 수십 차례 때렸다.
이 씨에게 오랫동안 매타작을 당한 이들 부부는 간신히 이 씨 집에서 나왔지만, 힘에 부친 A 씨는 이 씨의 집과 불과 4~5m 떨어진 곳에서 주저앉았다. 간경화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A 씨를 대신해 이 씨와 함께 소주를 마신 B 씨는 소변이 급해 A 씨에게 “집으로 빨리 오라”고 말한 뒤 먼저 집으로 돌아가 잠들었다.
다음 날 새벽 남편 A 씨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안 B 씨는 남편을 찾아 이 씨의 집 근처에 갔고 길에 쓰러져 있는 A 씨를 발견, 이 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 씨를 임실의료원으로 옮겼지만 A 씨는 끝내 숨을 거뒀고, 함께 폭행당한 B 씨도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어 현재 치료 중이다.
경찰 조사결과 A 씨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씨는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다음날인 지난 30일 오전 5시 43분께 B 씨로부터 A 씨가 자신의 집 앞에 쓰러져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이 씨는 “부부싸움 끝에 사람이 숨졌다”며 B 씨를 용의자로 내세워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출동한 경찰은 이 씨의 신고 내용과 달리 △전날 이 씨와 부부가 함께 술을 마신 점 △숨진 A 씨의 몸에 멍이 많은 점 △이 씨의 나무 지팡이에 피가 묻은 채로 부러져 있던 점 등을 확인해 이 씨를 현장에서 긴급 체포했다.
현재 이 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지만, B 씨는 “이 씨의 폭행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으며 이 마을에서 10여 년 간 사실혼 관계로 살아온 A 씨 부부는 이 씨의 집과 400~500m가량 떨어진 이 씨 형의 빈집에서 월세를 내지 않고 생활하며 혼자 사는 이 씨의 집 청소와 빨래 등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과정에서 부인 B 씨는 “이 씨가 평상시에도 자신의 집에 불러 마루도 닦게 하고 빨래도 시키는 등 자신들을 종 부리듯 했다”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맞은 적도 있지만 무서워서 신고한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B 씨의 진술이 신빙성은 있어 보이지만 충분한 증거가 입증되지는 않은 단계”라면서 “A 씨가 정황상 타살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