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감] 전주에 둥지 튼 허인석 만화가

만화 통해 '상상-일상 경계 허물기'…'구도심에 활력' 정성

▲ 허인석 작가가 작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만화를 하루 종일 읽는 게 꿈 인적도 있었다. 어른들이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었다. 만화 속에는 상상하는 만큼의 자유로운 세상들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화는 고귀한 회화와 보잘 것 없는 낙서 그 사이 어디쯤 위치하며,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 속의 상징들과 매일매일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의 표현 사이에서 둘 사이의 경계의 탈출을 꿈꾼다. 만화책에서 웹툰 까지 만화는 우리의 일상에 그 어떤 회화보다 깊게 들어왔다. 일상의 삶 그리고 꿈꾸는 삶, 어떤 게 진짜 우리의 삶일까. 뜨거운 여름날 전주 구도심의 만화가도 그런 꿈을 꾸고 있다. 차이나거리 중국화교소학교 사거리에 작년(2015년)에 들어선 ‘갈라파고스를 탈출한 푸른발 얼가니새’ 공간이 바로 그곳이다. 잡화를 팔던 가게였던 이 공간은 작년 허인석(39)작가가 들어오면서 활력 있는 차이나 거리로 변화시켜가며 일상의 시원한 탈출을 꿈꾸고 있다.

 

△차이나거리 한켠에 들어선 공간

 

허 작가는 주변의 젊고 독특한 식당, 공방, 소품가게들과 함께 정기적 프리마켓인 ‘비단길시장’을 함께 만들어갔고, 올해는 차이나거리의 진미반점 사장님 도움을 받아 중국화교소학교에서 비단길 시장을 열고 있다. 보따리단, 아워라이프, 푸른발 얼가니새가 기획·운영단이며, 12팀 정도의 프리 마켓팀이 참여하고 있다.

▲ 허인석 작가가 운영하는 전주 차이나거리의 복합문화공간 ‘갈라파고스를 탈출한 푸른발 얼가니새’ 내부, 시민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일상의 모든 것이 흐르는 거리와 상상속의 만화세상이 만나 사람들이 꿈꾸는 모든 것을 이루어주고 싶다는 허 작가. 전주 구도심에서 태평양 갈라파고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상상. 고단한 일상과 사람들의 삶이 때론 바보 같지만, 바닷 속 사냥만큼은 담대하게 해내는 멋진 새의 모습을 찾아주고 싶어 한다. 푸른발 얼가니새는 동태평양 갈라파고스에서 사는 푸른발이 신비한 가다랭이잡이과의 새로, 스페인 속어인 ‘bobo’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뒤뚱뒤뚱 걷다가 그냥 잡혀버리고 마는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모습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지역 이야기담는 작가로 유명

 

허 작가는 이야기지도의 작가로 이미 유명하다. 2010년 전주한옥마을 이야기지도를 시작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마을, 동네, 공간들의 모습을 지금까지 계속 표현해 왔다. 전주막걸리지도 일러스트, 슬로시티 전주 한옥마을 느린 우체통 디자인, 전주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전주 생태동물원 일러스트, 전주 청정노송마을지도 일러스트 등 그녀의 그림은 누구보다 보기 쉽게, 하지만,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담겨지듯 과하지 않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전주 뿐만이 아니다. 월악산 국립공원 골뫼골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김제시 벽골제 관광안내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공주산성시장 이야기지도 일러스트, 고산 미소시장, 군산대학교 박물관 기념품제작에 이어 최근 고창 하전갯벌체험마을지도에 들어가는 일러스트까지 그녀의 그림을 찾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씩 둘씩 입소문을 타고 찾아온다.

 

작은 그림 한 장 그리며 살아가는 만화가가 이렇듯 거리의 이야기를 그리게 되고, 또한 단순한 거리, 마을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기까지에는 한때 6년간(2008년~2013년) 근무했던 한옥생활체험관에서의 생활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예약운영팀을 맡으며, 매일매일 숙박객들을 받으면서, 사람들이 한옥마을을 찾는 이유, 한옥마을에서 느끼고 싶어 하는 것들을 직접 느꼈고, 변화의 한복판에서 공간의 변화와 사람들의 움직임들을 읽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힘은 현재의 푸른발 얼가니새를 구도심에 만들게 된 밑바탕이 되었다.

 

△마음에 남는 관광상품 만드는 것 꿈

 

그녀는 공주대학교 만화예술과를 졸업하고, 집근처인 금산사 입구에서 혼자 부채에 동승을 그려주는 노상작가를 하기도 했다. 사람들 속에서 숨 쉬는 작가가 되기를 원하던 그녀는 그때부터 사람들의 일상과 행복이 담겨지는 그림을 그리기를 원했다. 그녀가 또한 즐겨 그렸던 그림은 야생화나 들꽃들이다. 여리면서도 존재만으로 모든 생명의 이유를 느끼게 하는 들꽃은 그녀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녀에게 한옥마을은 고즈넉한 마음의 거리이다. 상업적이고 욕망에 불타는 거리가 아닌 경기전 은행잎 한 잎 떨어질 때 누군가에게 그림을 건네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진정 행복한 마음의 거리로 한옥마을이 새겨지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정말 좋은, 마음에 남는 관광 상품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 허인석 작가와 ‘아워라이프’가 동문거리에 마련한 소품공방 ‘거기가게’ 전경.

차이나거리 비단길시장의 기획 운영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워라이프(Our Life)와 함께 푸른발 얼가니새는 동문거리의 감성 소품샵 ‘거기가게’를 열어 매장을 확대하기도 하였다. ‘거기가게’는 동문거리의 편집샵 건물인 바람골목의 4층에 위치하고 있다.

 

한옥마을과 차이나거리, 그리고 많은 청년들과 소통하며 만들어가는 동문거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허 작가는 오늘도 작은 자전거에 작은 선글라스를 끼고 그림을 찾아 거리를 다닌다. 푸른발 얼가니새는 디저트 까페도 겸비한, 배도 든든한 따뜻한 복합문화공간으로의 새 변신도 준비하고 있다. 구도심의 새로운 장소와 삶을 만들어내고 있는 허 작가의 일상탈출은 사람들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며, 전주 구도심의 젊은 힘을 만들어 내고 있다.

▲ 이수영 문화포럼 이공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