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종교문화축제

전주 승암산(僧巖山)은 조선시대까지 ‘중방위’로 불러졌다. 스님의 염불하는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에는 태고종 사찰 승암사가 자리하고 있다.승암사는 신라 때 도선(道詵)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고 승암산이 사찰로 유명해진 산은 아니다. 오히려 견훤이 후백제의 왕도를 보호할 목적으로 쌓은 동고산성이 승암산 자락에 있으며, 풍수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오목대·이목대·자만동 등 주변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급도 즐비하다.

 

전주 한옥마을을 발밑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승암산에 치명자산(致命者山)이 있다. 최근 관광객들에게 더 많이 불러지는 치명자산에는 호남에 처음 복음을 전했던 유항검, 동정부부로 순교한 유중철(요한)과 이순이(루갈다)의 유택이 있다. 유항검 묘역이 여기에 조성된 것은 1914년이며, 천주교 차원에서 성지 논의가 이뤄진 것은 1980년대 초다. 성지 조성과 함께 1994년 순교자 묘 바로 밑에 성당이 건립돼 매일 미사를 올리고 있다. 2014년 복자의 품위에 오른 5분이 이곳에 모셔져 있어 전주를 찾는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순례 코스가 됐다.

 

전북도와 세계종교평화협의회가 오늘부터 5일간 2016 세계종교문화축제를 연다. 4대 종단(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이 참여하는 축제다. 그러나 배타성이 강한 각기 다른 색깔의 종교가 한마당에서 어울린다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실제 2012년 세계순례대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할 당시 4개 종단이 참여했으나 그 후 불교계가 2년 연속 불참했다. 지난해 ‘순례’대신 종교문화축제로 이름을 바꿔 불교계가 다시 참여하게 됐다. ‘순례’가 특정 종교에 치우치는 뉘앙스를 주는데 대한 불교교단의 거부감을 다른 종단에서 이해하면서다.

 

종교문화축제의 모태와 핵심이 ‘순례’였으나 올 축제에서는 ‘이웃종교 돌아보기’라는 이름으로 ‘종교문화탐방’이 소박하게(?) 진행된다. 축제 주최측이 제작한 팸플릿상 주차장이 치명자산이 아니라 승암산으로 표기한 것에도 눈길이 갔다. 일반 혹은 관광객들의 눈높이가 아닌, 종단 상호간의 입장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미덕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축제의 모양새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종교간 벽을 넘어 진정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축제의 취지를 살렸으면 좋겠다. 종교계가 새만금 반대를 위해 불교 용어인 ‘삼보일배’ 아래 뭉친 것이 아주 오래 전의 일만은 아니다.

 

김원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