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정부 고정·변동 직불금, 전북도·시군 자체 직불금 등 각종 지원금이 ‘쌀 시장 안정화’ 명목으로 투입되지만 쌀값 폭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부으면서 쌀 재고량은 늘어만 가고, 풍년에도 쌀값은 폭락하는 실정이다.
이에 쌀 생산조정제를 도입하고, 저율할당관세(TQR) 수입쌀을 밥쌀용이 아닌 사료용으로 전환해 수입·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쌀 생산조정제는 논에 벼 대신 보리나 귀리 등 조사료를 재배할 때 정부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25일 전북도에 따르면 이달 15일 기준 전국 산지 쌀값(80㎏)은 13만 5544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5만 9648원 대비 15.1% 낮다.
전북지역은 더 심각하다. 이달 20일 기준 도내 18개 미곡종합처리장(RPC)의 산지 쌀값 평균 가격은 13만 1720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5만 5000원보다 15.1% 떨어진 가격이다.
△쌀 재고량 급증, 쌀 생산량 향상, 쌀 소비량 감소…트리플 원인= 반복되는 쌀값 하락의 원인은 폭증하는 쌀 재고량, 기후 온난화에 따른 쌀 생산량 증가 등 크게 두 가지다. 여기에 가파르게 감소하는 1인당 쌀 소비량도 한몫한다.
올해 전북지역 벼 재배면적은 12만 1026㏊로 지난해 12만 1765㏊보다 739㏊ 감소했지만, 작황이 양호해 총 생산량은 지난해 수준인 70만 톤으로 예상된다.
특히 최근 4년간은 대풍이었다. 10㏊당 쌀 생산량은 2012년 478㎏에서 2013년 537㎏, 2014년 548㎏, 2015년 575㎏ 등이다. 작황이 좋지만, 햅쌀이 시장에 풀리면 기존의 쌀 재고량과 맞물려 쌀값이 더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창고에 묵혀둔 쌀 재고량도 문제다. 지난 7월 기준 정부 양곡 재고량은 175만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9만톤보다 36만톤 많고, 8월 기준 민간 재고량도 26만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9만톤보다 7만톤 더 늘어난 상태다.
연도별 전북의 정부양곡 재고량도 2012년과 2013년 각각 18만 2000톤, 2014년 26만 2000톤, 2015년 35만 9000톤, 2016년 8월 기준 33만 1000톤으로 늘었다. 전북에서만 쌀 보관비용으로 매년 120억원이 소요된다.
또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은 2011년 71.2㎏에서 2013년 67.2㎏, 2015년 62.9㎏으로 4년간 10% 가까이 감소했다.
△쌀값 하락으로 불어나는 정부와 자치단체 재정 부담= 쌀값 폭락으로 지난해 정부는 고정형 직불금 8400억원, 변동형 직불금 7250원 등 쌀 직불금으로만 1조 5650억원을 투입했다. 전북도도 자체 쌀 직불금으로 120억원, 14개 시군도 자체 쌀 직불금으로 571억원 3700만원을 지급했다.
올해도 도비 120억 원, 시·군비 626억 원 등 총 746억 원을 쌀 직불금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쌀 과잉 공급에 따른 쌀값 하락을 막지 못한 결과가 고스란히 정부와 자치단체의 재정 부담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전북도가 쌀 생산조정제 도입을 정부에 건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쌀 생산조정제는 논에 벼 대신 대체작물을 재배하면 1㏊당 300만 원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쌀 생산량이 감소하면 산지 쌀값은 오르고, 변동형 직불금 규모는 줄어든다는 게 농림축산식품부, 전북도 등의 판단이다. 쌀 생산조정제는 2003~2005년 3년간 운영된 후 중단됐다.
전북대 농업경제학과 송춘호 교수는 “쌀 생산조정제에 따른 ‘풍선효과’(대체작물 재배로 인한 가격 하락)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정 곡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조사료 품목에 한해 쌀 생산조정제를 실시해야 한다”며 “연간 5만㏊ 규모(사업비 1500억 원)로 쌀 생산조정제를 시행하면 25만톤의 쌀 생산량 감소 효과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관세화 전환으로 수입쌀의 용도 규정이 없어졌기 때문에 수입쌀의 사용 용도를 사료용으로 명확히 해 수입·사용할 필요가 있다”며 “2004년 쌀 재협상 협정문에는 ‘국내쌀과 수입쌀의 유통을 동일하게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2012년과 2016년에 국내쌀을 사료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수입쌀도 사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석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