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자전거 (상) 현장] 차도에선 천덕꾸러기, 인도 달리면 불법

자전거도로 이어지지 않고 인도와 구별 안돼 주행 곤란 / 전주 '자전차 시민행동' 출범

▲ 지난 22일 전주 가련광장 사거리를 출발한 ‘자전차가 전주에게 길을 묻다’ 회원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박형민 기자

지난 1993년 8월 호남지역에서 처음으로 전주 시내에 자전거 전용도로 개설사업이 추진됐다. 당시 내무부(현 행정자치부)는 전주와 서울, 대전, 과천, 수원, 창원, 제주 등 전국 7곳을 자전거 도로 시범사업 도시로 선정했다. 이후 23년이 지난 2016년 10월 22일 전주시 덕진동 덕진공원에 있는 공영자전거를 대여해 이용해봤다. 대여소에서부터 자전거 도로가 이어지지 않았고, 멀리 떨어진 자전거 도로는 인도와 구별이 안 돼 주행이 어려웠다. 특히 가족과 연인, 스마트폰을 응시하는 보행자들을 피해다녀야 했고, 도로는 차량이 빠르게 다녀 다가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주시가 23년간 자전거 정책을 유지했지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전주지역 자전거 도로 현장과 실태, 방안 등을 3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지난 22일 오전 8시 전주시 덕진동 원광대 한방병원 앞이 후끈 달아올랐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김길중 씨(생태교통시민포럼 운영위원·한의사)가 말했다.

“30분 뒤에 출발합니다. 위험할 수 있으니 안전모 착용 부탁드립니다.”

페이스북에 생중계되는 영상에는 지인으로부터 23개의 ‘좋아요’가 붙었다. 어린 아들과 함께 참여한 엄성복 씨(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 시민정책실장)가 자전거와 유모차를 연결한 모습은 흡사 덴마크의 도시 코펜하겐을 연상케 했다.

자전거를 사랑하는 전주시민들이 함께 한 ‘자전차가 전주에게 길을 묻다(이하 자전차 시민행동)’가 출범되는 순간이다. 전주 시내 어디든 자전거가 다닐 수 있다. 그런데 방식이 달랐다. 왜, 지금, 여기여야 할까.

자전차 시민행동은 그 답을 “자전거와 자동차의 공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길중 씨의 제안으로 시작된 자전차 시민행동은 회장을 비롯한 공식 조직체계를 갖추지 않은 채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운영위원을 맡아 서로 도우며 격주 토요일 도로 위에서 자전거의 주행권 확보를 외칠 예정이다.

“출발!”

오전 8시 30분이 되자 선봉에 선 김길중 씨의 외침과 함께 행사 참여자들은 전주시청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코스는 편도 3차선인 기린대로의 우측 끝 차선을 이용했다. 그 뒤를 차량 1대가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에스코트하며 붙었다. 주말 아침이라 차량은 한산했지만, 일부 구간에서는 주정차 차량이 자전거의 흐름을 이따금 방해했다. 버스와 택시 등 일부 차량은 자전거 행렬을 추월해 끼어들기도 했다. 자전거는 종합경기장 사거리를 지나 태평양수영장 앞에서 팔달로로 방향을 틀었다. 직진 차선(1·2차선)을 이용해 기린대로로 지나가면 전주시청에 곧장 가겠지만, 자전거는 차선 변경이 안 되기 때문이다.

시민 소현순 씨(51·전주시 덕진동·여)는

“우연찮게 SNS를 통해 이 모임에 참가하게 됐다”며 “비가 오지 않는 한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인도는 보행자들 때문에 위험하고, 차도는 자동차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자동차와 같이 ‘차(車)’에 해당해 자전거 도로가 없는 일반도로에서는 도로 맨 우측 가장자리로 다녀야 하고 횡단보도 주행, 역주행, 음주운전도 금지된다.

그러나 도로교통법에서 제시하는 것 처럼 자전거가 도로 위를 다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길 잃은 자전거’는 자전차 시민행동만의 고민은 아니다.

23일 전주시청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자전거’라는 키워드를 조회한 결과, 지난 2006년부터 최근까지 ‘답답한 전주시 자전거 도로’ 등 300여 개의 민원글이 올라왔다. 전화와 방문접수를 고려하면 시민들의 불만과 항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김길중 씨(생태교통시민포럼 겸 한의사)는

“자전거가 도로에서는 밀려나고 인도는 애매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안전하고 즐거운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나가는데 시민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