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판 돈 불과 70원으로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군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1915~2001)은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빛나는 기업가로 기억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쌀가게 경영부터 시작해 숱한 도전과 실패를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은 그의 창업정신은 오늘날 현대 그룹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마다 난색을 표하는 직원들에게 “해 보기나 했어?”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의 앞에선 ‘안 되는 일’이란 없었다.
그는 많은 어록을 남겼다. “시련은 있지만 실패는 없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다.”, “길이 없다면 길을 찾아라. 만약 찾아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길을 닦아 나가면 된다.”, “사람을 가장 멍청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고정관념이다”..등
최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폐쇄수순을 밟으면서 ‘창업자의 정신은 어디로 갔나’하는 생각이 든다.
군산조선소는 군산국가산단에서 지난 2008년 기공식을 가진 후 일사천리로 2010년 완벽한 생산라인을 갖췄다. 투입된 자금만 무려 1조2000억원이었다. 축구장 면적의 4배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와 한 번에 400대의 자동차를 들어 올릴 수 있는 1650톤의 골리앗 크레인은 최대 자랑거리였다.
조선소 유치 당시 전북도와 군산시는 항만 부지를 제척하는 특혜를 마련하면서까지 전북 경제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군산조선소는 그동안 벌크선과 유조선, 시추선 등을 건조하면서 전북 경제에 탄탄한 활력을 불어 넣어 전북의 희망이 됐다. 그런데 생산라인을 갖춘 지 불과 6년 만에 조선소의 도크 폐쇄는 무슨 일인가. 그러기 위해 1조2000억원이란 막대한 돈을 투자했단 말인가. 또한 세계 최대의 도크와 크레인을 세웠단 말인가.
조선 시장의 불황 속에서 이익 창출을 우선으로 하는 기업의 경제논리로 볼 때 우선 경쟁력이 떨어지는 군산조선소의 도크 폐쇄는 이해가 간다. 그러나 군산조선소는 기업의 경제논리로만 도크가 폐쇄돼선 안된다. 무려 5000여 명 근로자들의 생계가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이 건립한 군산조선소가 한국의 망국병인 지역 감정을 허무는 중요한 상징이 됐기 때문이다.
많은 영남출신 조선(造船)기술자들이 군산으로 이전, 시민들과 터놓고 정을 나눔으로써 영호남 화합의 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 군산조선소는 ‘돈으로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기업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 군산조선소의 폐쇄 소식에 도민은 허탈해 하고 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듯이 조만간 조선 경기는 다시 회복될 것이다. 이게 자연의 이치다. 그때 가서 군산조선소 도크 폐쇄를 후회할 것인가.
현대중공업은 하나밖에 없는 군산조선소 심장인 도크의 불꽃이 꺼지도록 해선 안된다. 현대중공업 조선산업의 미래와 군산조선소가 가지는 상징성을 고려, 도크의 불씨는 계속 살려 나가야 한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헤쳐 나가는 현대 그룹의 창업정신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