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저운 첫 소설집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중·단편 9편 엮어

국가폭력·사회 모순·여성 문제…현 시국 꿰뚫어

 

‘백성의 운명은 그가 속한 나라의 의지에서 만들어진다.’ 버려진 사람들과 짓밟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회문’에 있는 ‘소설 속 소설’ 형태의 프롤로그에서 보여준 저자의 냉철한 시각이다.

 

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현 시국에서 소설집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 (예옥)를 펴낸 김저운 씨는 그래서 뜨겁고 굵은 눈물을 흘린다. 국가조직의 폭력을 직시하고 또 그 권력의 희생자를 어루만지며, 사회구조의 모순, 여성 문제와 성폭력 등을 온몸으로 부둥켜안고 살아온 삶. 그러면서도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글을 써 왔지만 허상에 매달린 건 아닌지 부끄러워했던 그 삶이 한 권의 소설집으로 거듭났다.

 

지난 1989년에 등단한 이후 27년 만에 펴낸 첫 소설집. 20여 년간 써온 중편소설 1편과 등단작 등 단편소설 8편이 담겨있다.

 

‘개는 어떻게 꿈꾸는가’는 인간의 도덕성 문제를 예리하게 짚어낸다. 자신이 기르던 개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어머니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한 아들의 노력을 다뤘다. ‘청학동 가는 길’은 교편생활에서 느꼈던 학교문제와 교내 권력의 문제를, ‘로그아웃’은 현대사회에서의 인간관계의 문제점을 짚어낸다.

 

표제소설인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는 마지막까지 방관자로 남은 사람의 이야기이며, 근·현대사의 여성 수난사를 다룬 ‘거꾸로 흐르는 강’은 전쟁과 독재, 이데올로기의 희생자임과 동시에 남성이라는 젠더권력의 폭력에 희생되는 이중의 희생자로서의 여성 문제를 담아냈다. 수난을 겪은 여성들의 연대기인 ‘연’은 오히려 남성으로부터 독립하여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는 여성의 모습에 주목한다.

 

진정한 휴머니즘이란 무너진 사람의 육신을 끌어안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그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그들도 몰랐던 그들의 진실’. 사춘기를 강타했던 성폭행 사건을 다룬 ‘소도의 경계’. 그리고 소설의 윤리는 단순히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에서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 말하게 하는 것임을 보여준 ‘회문’.

 

<누가 무화과나무 꽃을 보았나요> 는 여러 소설을 엮은 소설집이지만 하나의 장편소설처럼 읽혀진다.

 

특히 발해 유민 이야기를 다룬 마지막 소설 ‘회문’에서 저자는 나라 잃은 백성들의 처참함을, 그리고 백성을 버리는 군주를 고발한다. 그리고 한 나라에 속한 국민들의 운명과 의지, 그리고 그들이 대립하고 갈등하며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담아냈다. 우리가 직면한 현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관통해가고 있다.

 

“인간의 모순, 그래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현미경으로 바라보고 싶었다”는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어둡고 차가운 곳에도 만화경 같은 세상이 있었다”고 밝혔다.

저자 김저운은 부안 출생으로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30여 년간 중·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 명예퇴직, 전업 작가가 되었다.

 

1985년 <한국수필> 에서 수필, 1989년 <우리문학> 에서 소설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산문집 <그대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바람이 불고> , 공저 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 , 휴먼르포집 <오십 미터 안의 사람들> 등이 있다. ‘전북수필상’과 ‘작가의 눈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