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제스처

도널드 트럼프가 제 45대 미국대통령에 당선됐다. 미국의 선택은 놀랍고 충격적이다. 역대 최악의 진흙탕 싸움이 된 대선 과정에서 과거의 행적이 낱낱이 드러난 트럼프의 당선에 자괴감을 갖게 될 미국인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당선 하루 만에 그동안의 입장을 완전히 바꾼 트럼프와 함께 미국이 모두 나서 통합과 화해를 외치고 있다. 당장 ‘대선 불복 시위’가 예상되는 등 미국의 통합을 향한 움직임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어찌 됐든 이런 태도 변화가 놀랍다.

 

트럼프는 9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호텔에서 “모든 시민을 위한 대통령이 되어 모든 미국인을 향해 화해와 협력의 손길을 내밀겠다”고 말했다.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한 데 힘을 합쳐야 할 때”라며 “공화당원, 민주당원, 부동층 모두 과거의 반목을 청산하고 미합중국의 깃발 아래 모여야 한다”고도 했다.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뜻을 함께하는 국가들과 같은 길을 나아갈 것”이라며 “미국의 국익에 최우선을 두면서도 모든 국가가 공정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제일주의를 외쳤던 기존의 입장과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다.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의 전략은 ‘적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미국의 이민자는 물론이고 중국과 한국, 무슬림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상식적이지 않은 공약과 주장으로 지지자들을 선동하며 ‘미국 우선’을 외쳤던 트럼프는 불과 하루 만에 통합과 화해를 외치고 있다.

 

패배를 공식 인정한 힐러리도 “우리는 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며 “트럼프가 우리 모두를 위한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평화로운 정권 교체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트럼프가 성공하고 단합해서 국가를 잘 이끌기를 성원한다”며 “이 나라에 필요한 것은 통합과 포용, 우리의 제도와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다. 우리는 한 팀이며 민주당과 공화당이 아니라, 미국민과 애국심을 우선에 두고 있다”고 통합을 반복해 강조한다.

 

트럼프의 통합과 화해의 손짓은 국제사회를 향해서도 이어진다. 당장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기존의 입장을 완전히 바꾸었다. “미국은 한국 방어를 위해 굳건하고 강력한 방위태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미국은 흔들리지 않고 한국과 미국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단다. 혼란스러운 이즈음 선거 하루 만에 통합과 화해를 외치는 트럼프와 미국의 진정성이 외려 의심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