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도 가지를 가려 앉는다

 

‘새도 가지를 가려 앉는다’는 속담이 있다. 비슷한 속담도 많다. 앉을 자리를 봐 가며 앉아라, 누울 자리를 봐 가며 발을 뻗어라, 이부자리를 보고 발을 펴라, 발 뻗을 자리를 보고 누워라.

 

김완주 전 도지사가 jb금융지주 계열의 우리캐피탈 상임고문 자리에 앉았다. 전주 풍남문 쪽 전북은행 남문지점 건물에 사무실을 냈다. 도백을 지낸 행정전문가가 돈 장사가 전문인 캐피탈사의 상임고문이라니, 엉뚱하다.

 

우리캐피탈은 애초 소매금융에 주력하던 전북은행이 영업반경을 넓히면서 인수한 대출 전문기업이다. 자동차 할부 구매자 등이 많이 이용하는 등 고리 장사이기 때문에 사업성이 괜찮고, jb금융의 캐피탈 인수는 성공적으로 알려진다. jb금융지주는 전북은행의 지주사다. 지분이 가장 많은 주주사는 삼양그룹이고, 삼양 특수관계인인 김한씨가 지주사 회장을 맡아 10년 가깝게 진두지휘하고 있다. 증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예전 전북은행 경영진에 비해 공격적이고 진취적이다. 돈줄이 몰린 서울 등 대도시 쪽 영업망을 강화했고, 우리캐피탈과 광주은행을 인수하며 몸집을 크게 늘렸다. 일단 성공적 경영 성과다.

 

jb금융 회장겸 광주은행 은행장인 김한 회장은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외아들이고, 김상협 총리의 부친은 삼양그룹 창업주인 김연수의 차남이다. 김한 회장은 김연수 창업주의 손자다.

 

김연수는 일제시대 때 사업판을 벌여 크게 성공한 기업인이다. 1963년 전주종합경기장 건설 때 거금을 쾌척했고, 1968년엔 울산 입지가 기정사실로 굳어졌던 현재의 휴비스 공장을 전주공단으로 돌리는 등 애향을 실천한 인물이다.

 

전북의 유지들은 김연수에 대한 고마움에서 그의 호를 딴 ‘수당문’이란 현판을 만들어 전주종합경기장 정문에 걸었다.

 

김완주 전 도지사가 전주시장이던 2005년 4월19일 전주시는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 등 시민단체와 함께 김연수 관련 친일 잔재로 지목된 ‘수당문’ 현판을 떼어냈다. 당시 김완주 전주시장은 “역사 바로세우기 차원에서 친일잔재 청산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감탄고토인가. 그런 그가 그로부터 11년 후 수당의 손자에게 몸을 의지해 녹을 먹고 있다. 그곳이 과연 발 뻗고 편안히 누울 자리인가 싶다. 기업으로선 대문 두드린 노객을 냉대 못하는 측은지심을 발휘한 것일까.

 

·김재호 수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