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도와 관련해서는 학문을 통해 세상을 이끌고자했던 정조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개혁과 대통합을 실현코자 했던 정조는 탁월한 정치로 한 시대를 통치한 군주였지만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저술가이기도 했다. 천성적으로 책읽기를 즐겼으나 바쁜 정사에 밀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던 정조는 그러한 아쉬움을 그림으로라도 채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는 책으로 채워진 장식장을 그리게 해 어좌 뒤에 놓인 ‘일월오봉도’ 대신 놓아두게 했다. 정조는 ‘이것은 책이 아니고 그림일 뿐이다’고 강조했다지만 이 책가도 병풍을 보며 학문으로 세상을 이끌겠다는 의지를 굳게 다졌을 것이다.
정조의 책가도 사랑은 특별했다. 왕권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도’대신 책가도를 놓게 한 것도 그렇거니와 내로라하는 당대의 화원들에게 책가도 그림을 그리게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자 이들을 귀양 보내고 다시 그림을 그리게 할 정도였다. 물론 정조의 책가도 안에 놓인 책들은 그가 읽었던 책들이거나 자신의 사상과 세계관을 반영한 책들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조가 애용했던 책가도 그림은 전하지 않는다.
책가도는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사대부 뿐 아니라 서민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달라져 책가도 안에 놓인 물건들은 책 뿐 아니라 일상용구나 골동품 등 책과는 관련 없는 다양한 물품이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 책가도를 탄생시킨 중국의 다보각경이나 다보격경은 장식장을 그린 그림이란 점에서는 성격이 같지만 그 안에 놓인 물건들이 도자기나 청동기 보석 등 귀한 물건이었던데 비해 조선시대 책가도는 귀한 물건보다는 책이 중심이었으니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정조의 책가도 사랑을 들여다보면 한 나라를 이끄는 통치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더 그렇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이 여전히 미궁이다. 실체가 하나씩 드러나고 있지만 그 드러나는 실체를 마주하는 국민들의 심경은 더 참담해지고 있다. 기막힌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