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통치자에게 측근은 양날의 검이다. 잘하면 충신이지만, 잘못하면 자신을 겨누는 칼끝이 된다. 안타깝게도 역사 속에서는 전자보다 후자의 이야기가 더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이유를 한비자는 ‘역린(逆鱗)’으로 설명하고 있다. 역린이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이다. 이 비늘을 건드린 사람은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이와는 달리 용은 길들이면 타고 다닐 수도 있다. 그래서 신하들은 거꾸로 난 비늘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으면서 용을 타고 다닐 궁리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린은 충언을 하고 제대로 보좌하며 올바른 길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언어는 귀에 거슬리고 좋은 약은 입에 쓰다. 통치자가 좋아할리 없다. 반대로 역린을 피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아부하면서 비위를 맞추는 것이다. 우선 듣기에는 기분이 좋고 그럴 듯하니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래서 자질이 부족한 군주 곁에는 항상 충신보다는 간신들이 들끓기 마련이다. 박근혜 정부의 주변에 온통 기름장어니 미꾸라지니, 국민밉상이니 하는 별명들만 보이고 청문회 증인들이 한결같이 잡아떼기와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시절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내각이니, 강부자(강남의 부동산 부자) 내각이니, 회전문 인사니 하는 말들이 나돌았던 것도 마찬가지다.
성호사서(城狐社鼠)는 성곽의 굴에 사는 여우와 묘당에 사는 쥐라는 뜻으로 임금에게 빌붙어 사익을 챙기고 국정을 농단하는 간신 측근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들을 제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여우굴을 들쑤시면 성곽이 무너질까 두렵고 쥐를 잡으려니 묘당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방치하면 민란이 발생하게 된다. 환관들의 국정농단이 불러온 황건적의 난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래서 군주는 항상 여우가 굴을 파고 쥐가 자리잡기 전에 간신들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구린내 나는 측근들을 멀리 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이 중심이 되어 함께 권력을 사유화하고 비리를 키워왔다. 이제와서 몰랐다, 선의로 한일이라고 발뺌해보지만 낯 두꺼운 변명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민들의 가슴속에는 이미 민란이 진행되고 있다.
이성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