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전북, 그리고 대선

전북출신 잠룡 없더라도 중앙에 지역인재 많아야 전북이 홀대 받지 않을 것

▲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전북 출신의 한 공직자는 1년 전 청와대 근무를 희망했다. 어떤 수석실 행정관 자리였다. 청와대 입성에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전언을 받고 근무하던 곳에서 짐까지 쌌다. 최종적으로 다른 공직자에게 밀려 다시 짐을 풀어야 했다. 당시 실망이 컸던 이 공직자는 요즘 가슴을 쓸어내린단다. 국정농단으로 청와대 전체가 국민적 지탄을 받는 상황이니 그럴 만하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현 정부들어 청와대는 전북 출신들에게 그야말로 높은 벽이었다. 청와대에 10개 수석실이 있으나 수석을 거친 전북 인사가 단 1명도 없었다. 수석은 고사하고 변변한 비서관 자리 하나 꿰차지 못했다. 지역현안을 놓고 청와대와 허심탄회 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처음부터 막혀 있었던 셈이다. 전북 인재가 홀대받았던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씨까지 말리지는 않았다. 익산 출신의 김백준씨가 총무기획관으로 재임하며 대통령 임기 내내 지근거리에서 청와대의 전북 창구 역할을 했었다.

 

형식논리로 본다면 전주 출신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이 현재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고 있으니 전북을 청와대의 먼 변방이라는 말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심판대에 올라 식물 대통령이 되지 않았더라도 전북 인사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을까. 아니 대통령의 업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비서실장 자리가 의미가 있기나 한가. 현 탄핵정국에서 전북 인사가 청와대에 중용(?)된 것에 자긍심을 가질 지역민은 없다. 오히려 수치스러운 일로 여긴다. 청와대 인맥이 없어 한탄했던 전북을 두 번 죽이는 꼴이다.

 

국정농단의 ‘최순실게이트’를 보면 박 정권의 청와대 조직이 우스꽝스럽기는 하다. 그렇다고 청와대 조직을 만만하게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최순실씨의 무소불위도 결국은 청와대 조직의 막강한 힘에서 나왔다. 청와대 조직을 등에 업지 않았다면 어찌 일개인이 국정을 쥐락펴락했겠는가. 청와대를 몰랐던 일반 국민들도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국정조사 청문회를 통해 청와대가 중앙 부처들을 어찌 주무르는지 알게 됐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속에 지탄을 받고 있는 청와대, 그곳에 전북 인사가 없었던 게 다행일까.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전북 관련 사업과 전북 인사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전북의 청렴성을 말해주는 것일까. 그보다는 전북 인맥의 협소함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확인시켰다고 본다.

 

인맥을 말할 때 ‘6단계 법칙’이 인용된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스텐리 밀그램 교수가 ‘좁은 세상 실험(small world experiment)’을 통해 미국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하고도 평균 6명만 거치면 연결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킨 데서 나온 법칙이다. 미국 보다 훨씬 좁고 혈연·지연·학연이 긴밀하게 연결된 우리나라에서는 경로가 짧아 3.6명만 거치면 누구든 알 수 있다는 조사도 있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그 거리는 더욱 좁혀지는 추세다. 그러나 단순히 아는 것과 깊게 잘 아는 것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단계를 많이 거칠수록 인맥의 깊이가 엷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청와대 참모자리를 화두로 삼아야 하는 전북의 처지가 처연하기 그지없다. 대선 후보로 거명되는 숫자가 15명 안팎에 이른다지만 전북 출신의 잠룡은 없다. 주인 없는 전북을 텃밭으로 삼으려고 욕심을 부리는 후보들을 도민들은 그저 지켜봐야 할 뿐이다. 그렇다고 잠룡의 반열에 오른 전북 인물이 없다고 누굴 탓하겠는가. 잠룡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닐 텐데.

 

대선에서 박근혜 정부 때와 같은 인맥 부재 사태를 막는 게 그나마 전북이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이지 싶다. 물론 국가지도자를 뽑는 대사에 지역의 잣대를 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의 기준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지역을 배려할 줄 모르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외면하는 지도자는 이미 자격이 없다.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못 봐도 사람은 큰 사람 덕을 본다고 했다. 큰 사람 옆에 전북의 인재들이 많이 몰려야 한다. 최소한 인맥 부재 때문에 현 정부때 처럼 전북이 홀대받는 일은 없어야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