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깎으며 - 이재천

시간이 손끝에 쌓이면

 

문명에 순화됐던 야만이 돋아난다

 

근질근질한 맹수의 싹이 길어

 

할퀴는 각질을 깔끔히 자르면

 

한동안 잊은 듯

 

유순한 문명의 여유가 신선한다

 

오늘도

 

본향을 향해 갈수록 짧아지는

 

남은 아쉬운 삶

 

길어나는 원시 유전자를 세월로 깎아

 

생生을 메워 나간다

 

떨어져 나가는 각질의 이별이

 

영원히 멈추는 순간

 

문명의 틀 모두 내려놓은

 

태고 원시 야생으로의 귀향

 

△‘손톱은 슬플 때 자라고 발톱은 기쁠 때 자란다’는 속담이 있다. 우리 삶은 슬픔이 기쁨보다 더 많다는 말이다. 야만이 우리를 지배하는 순간 슬픔은 돋아난다. 원시의 유전자가 시간 안에서 순치되지 못했을 때, 상대를 할퀴는 슬픔이 자란다. 손톱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 본향으로 귀향하는 거라면, 살아있는 동안은 슬픔도 계속 자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손톱은 기쁠 때 자라고 발톱은 슬플 때 자란다’로 바꿔서 믿고 있다. 손톱을 깎을 때 마다 감사한다. 김제김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