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년(丁酉年)의 눈부신 새해 첫날, 필자는 ‘천년 전북, 청년 전북’의 닭띠 태생으로 올해는 남다른 해가 되리라는 바람을 안고 평소엔 오르지도 않던 모악산 정상을 밟았다. 지난날의 시련과 아픔을 멀리 떼어버리고 나와, 새해의 소망을 가슴 속에 되뇌었다. 지난 4년의 풍상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갔지만, 비단 필자의 개인적인 고뇌만은 아니었음을 -현 시국이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듯- 오늘 아침뉴스는 어제와 별다를 바 없었다.
본질로 되돌아가야 새로움 얻어
창작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는 병적으로 매순간 새로운 소리 혹은 가치 있는 소리에 목말라 했다. 악상의 부제로 숨통을 조여 오는 것을 느낄 땐 불현 듯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결국 본질로 되돌아가야지만 새로움을 얻게 됨을 깨닫는다. 그땐 이미 마감시간에 쫓겨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이런 삶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달려온 것을 보면 ‘바보’가 아니라면 청춘의 다른 이름, ‘열정’이었을까.
전라북도는 문화예술의 훌륭한 인적자원과 유구한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대의 전통문화 발상지이다. 수준 높은 전북의 귀명창이 ‘소리의 고장’ 전북을 지켜내고 있다는 사실에 이견이 없을 듯하다. 창작음악 역시 그에 걸맞는 수준의 음악적 양식을 갖추어야 할 터이니 지역의 국악계를 이끌어갈 청년 국악인들은 어깨가 실로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요즘은 갈수록 자극적인 것의 수위가 높아만 간다. 뉴스, 드라마, 음식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러하다. 음악 역시 빠른 정보 습득과 유행을 쫓으며 편향되는 현상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자극에 익숙해질 때 즈음 우리는 더욱 심한 자극을 맞이한다. 새로운 공연주제와 무대연출, 소재의 홍수 속에 창작음악은 유행처럼 번지듯 관객의 구미에 맞춰 MSG를 뿜어낸다. 저마다 같은 소리와 무대를 보이며 악곡의 해석은 산(山)으로 갈 때가 허다하다. 때로는 과하다 못해 어떤 음악을 표현하려는 것인지 조차 분간이 안갈 때도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실험적인 악곡의 다양한 편곡 방향을 정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악곡을 표현함에 있어 음향에 대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음악을 억지로 짜 맞춘 것 같은 느낌보다는 조금 더 안정되고 효율적인 음악구조로써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 발전적인 창작국악으로, 청년국악으로 나아가야겠다.
1145년(인종 23) 김부식 등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전하길 신라 진흥왕 시절 우륵이 제자의 음악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樂而不流 哀而不悲 (낙이불류 애이불비)” 즐겁지만 넘치지 아니하고 애절하지만 슬프지 않다. 이 말은 “즐기되 지나치게 휩쓸리지 않고 슬퍼하되 비탄에 빠지지 않는다”는 음악 최고의 경지를 뜻한다. 또한 애이불비(哀而不悲) 이전에 애이불상(哀而不傷)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간추린 시경(詩經)에서 문왕(文王)과 후비(后妃)의 덕을 노래한 관저(關雎)라는 곡(曲)을 이렇게 평하였다. “樂而不淫 哀而不傷 (애이불상 낙이불음)” 즐겁지만 방탕하지 아니하고 슬프지만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
청춘들, 여유 갖고 너의 길 가라
고대로부터 발전해 온 동아시아의 전통 사상은 음악이라는 예술에 살아 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끊임없이 고한다. 절제하라! 치우치지마라! 여유를 갖고 너의 길을 가라!
△강성오 씨는 국악작곡가 겸 지휘자이며 한국전통문화고·전주대 등에 출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