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옷 입고 큰 들판 지켰어요
벼농사 끝나고
참새도 다 가고
이제는 허수아비 쉬어야 해요
허수아비야
이젠 할 일 다 했으니
가도 된다
아니야
내가 여기는 서 있어야
먹이 찾는 겨울새들에게
안내 해 줄 수 있지 않겠니?
△얼마나 많은 허수아비들이 세상에 허수(虛數)를 길렀는지 하늘만 안다. 평생 헌옷을 받아 입고, 한뎃잠을 자며, 꿍꿍 일 밖에 모르던 허수아비는 이제 일을 그만하시라는 권유에도 쉬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세상에 많은 허수들이 아비를 닮아 쉬지 않고 일만 한다. 가끔 실수(實數)로 진입했다는 위대한 허수의 전설이 나돌기도 하나 허수는 허수이어야 한다고 허수 일 때 더 위대하다고 칼바람이 길들이고 있다. 김제김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