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33일, 팽목항 찾아가 보니…

전주 세월호 현수막 지킴이 등 43명 현장 방문 / 실종자 가족들, 3월 인양 시작만 기다리며 기도

▲ 11일 전주 풍남문 세월호 현수막 지킴이와 청년·시민 모임 회원 등이 모여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찾아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의 부모와 부둥켜 안고 슬픔을 나누고 있다.

깊어가는 겨울, 내리는 눈도 즐길 수 없게 마음에 못이 박힌 이는 바다에서 숨죽인 듯 조용하다. 세간의 명분을 받아야만 발걸음이 몰리는 이곳은 항상 춥다. 박근혜 탄핵 정국속에서 세월호 미수습 가족들은 그래서 하염없다. 이들의 공허한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해 세월호 참사 1033일째 전주에서 사람들이 모여 팽목항을 찾았다. 마음 속에 노란 리본을 패용한 그들의 여정을 따라갔다.

 

지난 11일 오후 1시 전남 진도군 팽목항. 눈발 날리는 엄동설한에 전주 풍남문 세월호 현수막 지킴이 채주병 씨(49)는 패딩 주머니에 손을 깊게 찔러 넣었다. 채 씨는 지난 2015년부터 팽목항을 자주 찾았지만 이날은 혼자가 아니었다. 인터넷을 통해 팽목항 방문 동참을 신청한 43명이 함께 아침 9시 전주 종합경기장에서 45인승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이들은 청년들이 모여 생각을 나누는 모임인 ‘김제동 클럽’회원들과 전주시 인후동 시민들의 모임인 ‘작은 움직임’과 가족들, 아흔이 넘은 어머니와 함께 나선 딸 등 1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했다.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과 달리 팽목항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조용합니다. 팽목항에 남겨진 분들은 울 힘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슬퍼하면 더 힘들어 할 수도 있습니다.”

 

도착 무렵 채 씨의 안내처럼 팽목항은 조용했다. 대신 육지에 묶어 놓은 바지선이 물결에 출렁이면서 들리는 쇳소리와 바람 소리가 거셌다.

 

세월호 미수습자 은화양의 엄마 이금희 씨(47)의 안내로 세월호 팽목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의 사진 앞에 노란 국화꽃을 두고 분향을 했다. 실종자의 이름에는 얼굴 사진없이 액자만 놓여 있었다. 노란 리본 모양의 장식이 달린 분홍 털모자를 쓴 92세 할머니는 “세상에 아이들 불쌍해서 어쩌나…”라며 딸의 손과 지팡이를 꽉 쥐었다.

 

컨테이너 3개를 붙인 휴식공간에 들어섰다. 11분짜리 세월호 동영상을 본 뒤 은화·다윤 엄마와 무릎을 맞대자 한 여성이 울음을 참지 못했다.

 

돌아오지 못한 다윤양의 엄마 박은미 씨(47)는 3일간 세수를 하지 못했다며 입을 뗐다.

 

“2014년 4월 16일 바다에 빠졌을 다윤이의 젖은 옷을 갈아 입히고 집으로 데려가려고 내려온 것인데, 지금 1030일이 훨씬 지났습니다. 아이를 찾아 달라고 했는데,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스마트폰 케이스에 붙은 노란 리본 스티커를 문지르던 전북 청소년의 힘 대표 이찬영 군(16)은 입을 꾹 다물었다.

 

“오늘 아침 눈이 많이 와 실종자 9명의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다 녹았더라고요. 바다를 다 퍼서라도 아이를 구하고 싶은데, 찾을 방법이 인양밖에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팽목항에 남겨진 부모는 표가 났다. 그 누구보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울고 웃기를 반복했다. 대화를 마치고 포옹한 뒤 희망의 등대로 향해 저마다 바람이 새겨진 노란 리본을 난간에 묶었다.

 

원광대 철학과를 중퇴해 전주의 한 중소기업에서 전기 안전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창하 씨(35)는 “ ‘김제동 클럽’에서 모인 청년 11명이 팽목항을 찾으려다 우연히 풍남문 세월호 현수막 지킴이들과 일정이 겹쳐 함께 왔다”며 “말로만 ‘세월호를 잊지 않겠습니다’가 아니라 박근혜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레이스 속에서 절대 소수인 세월호 미수습자 및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은화 엄마 등에 따르면, 인양은 겨울이 지나 3월께가 돼야 본격적인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조류 속도가 안정돼야 인양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그는 3~5월 아파트 7층 높이의 회오리가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데 공정을 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기도를 해달라고 말했다.

 

차가운 바닷속에 있는 자식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쏟던 이들 모두는 우리의 ‘어머니·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