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3일 만에 올라온 세월호, 전북도민들의 생각은

"9명 꼭 돌아오길"…"정치적 이용될까 걱정" / 고창석·이해봉씨 원광대 후배들도 탄식 / 사회구조 변화 기대…내달초 목포 신항 거치

▲ 1073일만에 세월호가 수면위로 올라온 23일 전주 풍남문 광장 세월호농성장에서 노란 리본 사이로 일렁이는 촛불 뒤로 세월호 미수습자 9명의 초상이 걸려 있다. 박형민 기자

우리 기억 속에 남은 세월호의 모습은 지난 2014년 4월 16일에 멈춰있었다. 그날 ‘SEWOL’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힌 선체는 반쯤 기울어진 채 바닷속으로 서서히 잠겨갔다. 그 안타까운 광경은 온 국민의 뇌리에 떨칠 수 없는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세월호 참사’ 그날이 있은 지 꼬박 1073일이 지난 23일. 우리는 그날의 모습과는 달리 시커멓게 부식되고 헤진 모습의 세월호를 다시 목격했다. 아직 수습되지 못한 9명이 타고 있는 세월호는 참사 이후 세 번째 봄을 맞은 지난 22일에서야 본 인양이 시작됐다.

 

도민들은 눈앞에 떠오른 세월호의 참담한 모습과 TV 속에 비친 미수습자 가족들의 눈물에, 세월호 인양의 기쁨을 표현할 수도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다시 떠오른 세월호, 도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주 풍남문 광장에 천막을 치고 3년째 세월호 남문농성장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는 박상희 목사(71)는 23일 세월호 인양이 시작됐다는 소식에 안도감과 함께 이제 세월호와 관련한 진실을 밝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유민 아빠’(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의 단식 소식과 함께 시작한 남문농성장 지킴이 생활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고 했다.

 

박상희 목사는 “세월호를 인양한다는 소식에 참 기뻤지만, 이내 ‘인양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는 마음이 들었다”며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진실이 밝혀져 광화문의 가족들이 천막을 거두는 날까지 계속 함께할 생각”이라고 다짐했다.

 

▲ 참사 1073일 만에 세월호 선체가 수면 위로 올라온 23일, 전주 세월호 남문 농성장 분향소 앞에 '1073일째'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권혁일 기자

 

이날 풍남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세월호 팔찌와 리본을 나눠주던 한다경 씨(49)는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을…”이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씨는 “배가 침몰했으면 인양하고 왜 그렇게 됐는지, 무슨 잘못인지 밝히는 것이 당연한 순서인데 3년 동안이나 미뤄온 것”이라며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검찰 수사를 받는 시기라 그들이 세월호 인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세월호에 남아있는 9명의 미수습자 중 단원고 고창석 선생님은 1993년 원광대학교 체육교육과에 입학했다. 20년의 세월이 지나 같은 학교, 같은 과에 입학한 고 선생님의 후배 최승걸 씨(24)는 “검게 부식된 세월호의 모습을 보니 유가족들의 마음이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까, 그분들의 마음도 까맣게 그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 고창석 선배의 이야기를 접했다”는 최 씨는 “고 선배가 온전히 가족 품으로 돌아오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원광대학교는 강의실 한곳을 ‘고창석 강의실’이라 이름 지었으며, 후배들은 고 씨와 또 다른 세월호 희생자이자 동문인 단원고 2학년 5반 담임교사 이해봉 씨(국사교육과 01학번)의 추모행사를 매년 4월 16일에 진행하고 있다.

 

▲ 세월호 선체가 수면 위로 올라온 23일, 전주 세월호 남문 농성장에서 한다경 씨가 행인들에게 노란 리본을 나눠주고 있다. 권혁일 기자

 

지난달 11일 남문농성장 지킴이들과 팽목항에 다녀온 김창하 씨(35)도 세월호가 인양되는 모습을 보고 가장 먼저 팽목항에서 만난 유가족들이 떠올랐다.

 

김 씨는 “그 날 만난 유가족분들에게서 들은 ‘자신들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시간이 멈춰버렸다’는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며 “인양이 잘 마무리되고 수습이 잘 된다면 이제 유가족분들도 자신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한목소리로 덧붙이는 말이 있다. 바로 안전한 인양과 철저한 조사다.

 

이들은 “세월호와 관련한 수많은 의혹과 그 사이에서 상처받은 유가족과 국민이 있다”며 “유가족과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하고 무엇보다 미수습자들이 온전히 유가족 품에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이러한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책을 조속히 마련하고,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가 변화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한편,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세월호는 수면 위로 선체를 인양한 후 반잠수식 선박에 부상해 목포 신항으로 이동해 거치할 예정이다. 13~14일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이르면 4월 4~5일께 목포 신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다.

▲ 참사 1073일 만에 세월호 선체가 수면 위로 올라온 23일, 전주 풍남문 광장의 세월호 조형물 뒤로 '1073일째'라는 팻말이 서 있다. 권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