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짝 귀로 흘러가네
-시집오기 전, 봉동에서 살던 유한순 할머니는 삼례에 살던 남편을 만나 이 들녘에서 저 들녘으로 넘어왔다. 그 세월이 벌써 오십 년 째다. 너른 세상을 주유하지는 못했으나, 이 들판에서 모든 것을 다 본 경지가 시에 녹아 있다. 나이 들어 하는 한글 공부가 도무지 들어오지 않아 답답한 순간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애달파하지 않고 슬쩍 한 줄의 문장에 웃음으로 담았다. 좀체 쌓이지 않고, 들어와 흘러가는 ‘이짝 귀’와 ‘저짝 귀’ 사이에 할머니의 시간이 있다. 그 거리처럼 이짝 저짝 ‘가차운’ 들판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의 시공은 ‘그러거나 말거나 인생 별 거 있어.’ 하는 달관의 경지에서 긍정하는 아득한 깊이다.
글자를 알고 쓰기 이전의 저 너머에서 실려온 ‘무언’의 두께다. 무엇을 더 보태랴. 이재규(문학평론가)
*한글공부를 시작한 할머니의 시. 오탈자와 띄어쓰기를 수정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담았습니다. 출처: ‘할미그라피’(미디어공동체 완두콩협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