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에 바친다

▲ 신귀백 영화평론가

김훈은 『자전거 여행』의 서문에 ‘만경강에 바친다.’고 썼다. 몇 년 후, 이 작가는 소설 『칼의 노래』 작가의 말에서 ‘다시, 만경강에 바친다.’고 썼다. 김훈처럼 자전거는 없지만 드론을 들고 만경강에 나가보았다. 대아 댐에서부터 어우보 지나 망해사까지. 벚꽃 핀, 안개 낀,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그리고 해가 지는 만경강을 붙들었다. 오래 보니 아름다웠다.

 

지는 해 보며 명상할 수 있는 최적지

 

여기 만경강 어름, 춘포역 가까운 방뚝에 문학공원이 생겼다. 이 강이 낳고 기른 정양 시인, 윤흥길 소설가, 홍석영 소설가, 말석에는 안도현 시인의 시도 돌비에 새겨져 있었다. 안타까운 일은 공원 자리에서는 강이 잘 안 보인다는 것. 조금 아래쪽 강폭이 가장 넓게 휘어지는 사행하천 지점을 택했으면 좋았을 텐데.

 

만경강 둑 안쪽 둔치의 논들이 모두 사라졌다. 경작재배 금지. 농사과정 속 농약이나 비료가 흘러들어 수질을 망치는 것을 막고자 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일부러 꽃을 심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인데, 홍수가 한 번 쓸어가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할지. 숨어하는 사대강 사업으로 오늘도 둔치에는 포크레인이 계속 삽질을 하고 있고 거대한 트럭들이 제방 위를 달린다.

 

문학공원을 지나 목천포에 이르면 잘라진 만경교가 보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멘트 다리가 낡았다고 철거하려다 김제방면과 익산방면의 교각 서너 개씩만 남겨놓은 것. 만경교는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윤흥길의 소설 「기억 속의 들꽃」의 무대다. 익산국토관리청은 잘라진 다리 이곳에 데크를 설치하고 소설 속 장면들을 새겨놓았다. 밥값 했다.

 

해지는 쪽으로 더 내려가면 새챙이다리가 나온다. 이곳 또한 붕괴위험의 진단을 받은 곳이지만 청하면의 몇몇 생각 깊은 분들이 보존하고 가꾸어서 시민들은 낚시를 한다. 한 때 망둥어 천지던 신창진에는 이제 새만금에 막혀 붕어가 입질을 하고 김훈의 표현대로 ‘다리가 긴 하얀 새’들이 논다.

 

세상 그렇다. 임진강에서 낙동강 하구까지 모두 갈비집과 카페에 모텔 아니던가. 그러나 만개의 이랑을 적시는 이 복된 강은 고산천에서 망해사까지 쓸 만한 점방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논들에 젖을 흘려보내는 수문조절장치 말고는 인위적인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김훈은 모텔도 삽질도 없는 이 강 너머로 지는 해에 반했을 것이다.

 

여행의 트렌드는 변한다. 불국사나 콜로세움 같이 인류가 남긴 거대 문화유산에서 요즘은 한옥마을과 골목 등 시간 여행을 즐긴다. 언제까지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뭐냐? 자연이다. 만경강에는 안개가 피고 기러기가 날고 매일 해가 진다. 지는 해를 두고 명상을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적의 장소가 만경강이다. 그러니, 부디 만경강 가에는 그 어떤 것도 만들지 말고 짓지 마라.

 

강을 파헤치고 강물 막은 죄 씻어라

 

강의 끝에 소담한 절집이 있다. 바다를 잃은 망해사 앞은 이제 담수로 바뀌고 있다. 그 너른 땅에 골프장과 카지노를 지을 구상을 하는 중생들에게 한 마디 한다. 서해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새 땅에 망해사 지을 터를 전라북도민들에게 돌려주시라. 거기 한 오천 평 절집 지을 곳을 보시하여 수많은 게와 고동들, 서해 훼리와 이 앞길을 지나간 세월호의 넋들을 위로하게 하라. 강을 파헤친, 강을 막은 죄를 씻을 마지막 기회다. 그 절 세울 땅을 만경강에 바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