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인 장편소설 〈달궁〉 첫 출판 후 30년만에 다시 세상으로

개정 합본판으로 선보여

▲ 장편소설 <달궁> 의 저자 서정인씨(왼쪽)와 출판사 ‘최측의 농간’ 신동혁 대표.

‘네 눈의 불빛은 빛을 못 보아도 불빛이다. 흙에 묻혔다고 금강석이 보석이 아니냐? 내 딸아, 너는 진주다. 다만 사람들이 흙만 보고 그 밑을 못 볼 뿐이다.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 사람들 잘못이고, 사람들 잘못이 아니라 보물을 흙 속에 던져 버린 세상 잘못이다.’( <달궁> 중에서)

 

실험적인 소설쓰기를 꾸준하게 실천하며, 한국 소설의 지평을 질적·양적으로 확장하는데 기여해온 작가 서정인의 독특한 장편소설 <달궁> . 1987년에 처음 나왔지만 절판됐던 책을 약 30년 만에 새롭게 편집해 개정 합본판으로 선보인다. 바로 <달궁-박달막 이야기> (최측의 농간).

 

<달궁> 은 한국전쟁 중 부모와 헤어진 후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주인공 인실이 부정과 허위만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좌절당하는 일생을 그린 것으로, 인실의 순진함과 성공한 인물들의 허위의식이 더욱 대비되며 1980년대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한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저자 특유의 형식 파괴적 실험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개정판은 방대한 분량으로 세 권으로 나뉘어 있었던 책을 한 권으로 묶어 작고 가벼운 판형으로 새로이 단장했다. 서 작가는 전체 원고를 검토해 ‘박달막 이야기’를 부제로 추가하고 초판에 있던 일부 오식을 바로 잡고 문장 상당수를 개작해 작품 완성도를 높였다. 인실의 아(兒)명인 ‘딸맥이’에서 비롯되기도 한 ‘박달막’을 부제에 붙인 것은 ‘여성’이라는 것이 저주가 되는 세계를 살다간 한 여성의 기억을 훼손하지 않고 제대로 바라보려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서정인 작가와 출판사인 ‘최측의 농간’의 신동혁 대표는 최근 전북일보를 찾아 소설의 복간 과정에 대해 들려줬다.

 

서 작가는 “처음 복간 소식을 받았을 때 반가웠지만 옛날 책을 오늘날 사람들이 읽을까 싶어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자신 있기에 널리 알리고 싶어서 신문사를 찾았다는 신 대표는 “문학도들이 좋다고 하는 책을 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면서 “상품성을 떠나 시대를 초월한 문학성을 가진 책들이 절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서 작가의 <달궁> 은 흙에 묻힌 금강석이었다. 절판된 서적을 복간하는 출판사 ‘최측의 농간’은 흙을 털어내고 정성스레 닦아냈다. 오래 견딘 활자들은 바라진 것이 아니라 빽빽하게 뭉쳐 더욱 단단해졌다. 신 대표는 “900쪽에 달하는 막대한 양과 교차적으로 얽혀 있는 비선형적인 이야기들, 실험적 형식으로 인해 좀처럼 읽기의 진도를 내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를 받아들인다면 분명 소설 읽기의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