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요정 '행원'

구한말 서울 종로에 문을 열었던 ‘명월관’은 20세기 최초의 유흥음식점이었다. 명월관은 1909년 관기제도가 폐지되면서 딱히 활동할 곳이 없어진 궁중의 기녀들이 모여들어 영업이 번창하고 이름을 알렸다. 명월관은 주류와 음식을 판매하며 가무를 행할 수 있는 장소, 이른바 ‘요정’이었다. 당시 요정에서는 권번 출신의 기생들이 소리와 연주와 춤으로 주흥을 돋우었다. 그러나 해방이후 권번에서 교육을 받은 기생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단순히 술을 따르고 말벗으로 시중을 드는 유흥업종사자들이 기생의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자연히 요정이 갖고 있던 특성은 사라지거나 퇴색됐다.

 

전주에도 한때 ‘요정문화’가 성했다. 전주의 요정들 역시 권번 출신의 기생들이 사라져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이후에도 한정식 음식점으로 명맥을 지켰으나 90년대 말부터 서서히 문을 닫기 시작해 대부분이 이름을 지웠다.

 

2000년대 중반, 사라진 요정문화를 현대에 맞게 살려보겠다며 문을 다시 연 한정식 음식점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전주 풍남문 앞에 문을 열었던 ‘행원’이다. 전주의 요정문화를 이끌었던 ‘행원’은 그 자신 권번 출신으로 가무와 시서화에 빼어났던 화가 남전 허산옥(1926~1993)이 운영했던 요정이다. 남전은 1942년, 전주국악원이었던 ‘낙원권번’ 건물을 인수해 ‘행원’을 열었다. 정치인과 기업인 등 지역 유지들이 애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전주의 대표적인 요정으로 자리 잡은 ‘행원’은 한편으로는 예술가들의 거점(?)이기도 했다. 남전은 전쟁의 혼란 속에서 생계 자체가 어렵거나 피난을 온 내로라하는 당대의 예술인들을 불러들여 후원하고 창작활동을 북돋았다. 덕분에 ‘행원’은 예술인 식객들이 줄을 이었다. ‘행원’은 남전이 경영에서 손을 뗀 이후 두세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도 그 명맥을 유지했지만 운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문을 닫았다.

 

2005년, ‘행원’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나선 사람은 지방 무형문화재 판소리 기능보유자인 민소완 명창이다. 전통음악과 춤의 명맥을 잇게 한 요정문화를 살려 ‘전주의 풍류 명소’로 만들겠다는 그의 열정은 기대를 모았지만 역시 가중되는 운영난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 후에도 한정식 집으로 이름을 지켜왔던 ‘행원’이 최근 폐업했다.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손님들이 끊기면서 더 이상의 운영이 어렵게 된 탓이다. 이제 ‘행원’은 추억 속 공간이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기억으로만 남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