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백미의 도자기가 있다. ‘백자 철화 끈무늬 병(白磁鐵畵垂繩文甁)’이란 이름의 보물이다. 그 멋스러운 모습은 만든 이의 마음과 도자기를 취했던 선조의 풍류가 느껴지는 듯싶다. 풍만한 곡선을 그린 백자의 잘록한 목에, 휘감아 늘어뜨려져 살짝 말려진 끈이 여백의 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멋을 제대로 낼 줄 아는 선비가 바지 춤에 귀한 약주를 담은 술병을 걸고 마치 우리를 초대하는 것 같다. 이러한 기품이 있는 병에 담겨 봄나들이의 벗으로 함께 할 우리 술을 선택하라면, 주저 없이 죽력고와 이강주를 담고 싶다.
명주라는 표현에 걸맞은 죽력고와 이강주는 본디 갖고 있는 품성은 물론이고, 독특한 향미가 매력적인 술이다. 더욱이 예로부터 선조들이 약주 즉 ‘약이 되는 술’이라 하여 심신에 좋은 동반자로 여기며 귀하게 여긴 술 중에 최고인 술이다.
조선시대 후기 당시 우리 조상들의 연중행사와 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 봄에 마시기 좋은 술로 꼽은 호남의 술이 지금의 정읍에서 전해지는 죽력고이다. ‘죽력(竹瀝)’이라는 말은 대나무 진액을 의미하는데 약을 의미하는 ‘고(膏)’를 붙여 죽력고라고 불렀다. 죽력고가 봄에 마시기에 좋은 ‘술’이라지만 ‘약주’라는 단어에 걸맞게 예로부터 약으로 쓰였다는 것은 고문헌과 전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으로 순창에서 체포된 전봉준 장군이 모진 고문을 당해 몸이 상했을 때 죽력고를 구해 마시고 원기를 회복해 서울로 압송될 때는 수레에 꼿꼿이 앉아서 갔다고 전해진다. 이 죽력고가 꽤나 몸에 좋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다산 정약용 선생도 『목민심서』에서 “그 죽력을 채취하여 약을 조제하면 막힌 것을 트이게 하는 신기한 효력이 있어 저절로 많이 파급되는 것”이라고 효능을 인정하기도 하였다. 『구사당집』 제2권에는 “죽력고는 겨우 세 되를 얻어 복용하시고 있으나 이 섬에는 역죽(瀝竹)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고 또 생강도 없으니, 참으로 괴롭고 기막힐 노릇입니다”라며 병든 이에게 줄 죽력고가 없어 안타까워하는 대목도 등장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명성이 대단한 술인 죽력고는 현재 송명섭(宋明燮) 명인에게 정통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 죽력고는 며칠 동안 정성을 들여 죽력을 추출해야 하기에 대량생산이 무척 어려우며, 이 지역의 쌀과 대나무 진액 외에 생강, 계피, 솔잎. 석창포 등이 들어가므로 술보다 약에 훨씬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죽력고처럼 약주로 대접을 받는 대표적인 술이 또 있다. 이맘때 피어나는 배꽃의 배를 주재료로 빚어 죽력고처럼 봄의 술로 사랑받았던 이강주(梨薑酒)가 그것이다. 이강주 역시 약주였기에 ‘이강고(梨薑膏)’라는 이름이 함께 따라다녔다. 전주 일대에서 전해 내려오는 최고급 술로, 배(梨)와 생강(薑)이 들어가서 ‘이강(梨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주재료인 쌀과 정제수와 전주의 배, 봉동의 생강 이외에 울금, 계피, 꿀 등 몸에 좋은 재료들을 섞어 만들어 정말 약주라고 부르기에 제격이다. 특히 생강과 계피에서 나는 독특한 맛과 향 그리고 부드러움 덕에 선조들은 이강주를 더운 밤의 서늘한 초승달 빛으로 묘사하며 술잔 속 여유와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강주 또한 오랜 전통의 명주로 고문헌 속에 유독 자주 등장한다. 조선시대 순조 때의 문신 이해응(李海應, 1775~1825)은 『계산기정( 山紀程)』에 조선 최고의 술 중 하나로 이강주를 추천했고, 『동국세시기』와 『경도잡지(京都雜志)』 등에도 우리나라 5대 명주 중 하나로 이강주를 꼽곤 하였다. 이 문헌들에 의하면 이강주는 조선시대 상류사회에서 즐기던 고급 약주로서 “신선과 어울린다”는 평판까지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외에도 많은 문헌에서 이강주를 언급하며 그 역사와 전통을 증명하고 있는데, 봉산탈춤의 말뚝이 사설 부분에는 아예 “자라병, 강국주 이강주를 내놓고”라는 대사가 나오고, 한미통상조약 체결 당시에도 나라를 대표하는 건배주로 쓰일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술이 몸에 이로운 약주가 되려면 잘 마셔야 한다. 전해 내려오는 우리 옛말에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술을 마실 때에도 예의가 필요해서 사람들 사이 화목과 질서 유지를 위해 술 마시는 것을 예법으로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마을의 자치규약이었던 향약에는 이처럼 고을에서 어른을 모시고 술 마시는 예법을 배웠던 향음주례(鄕飮酒禮)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정극인 선생의 『불우헌집』을 보면 어린이는 서당을 열어서 깨우치는 법을 엄하게 하고, 이웃 간에는 향음주례를 정하여 화목한 규정을 세웠다고 말하고 있다. 손위 어른과 마실 때 두 손으로 받아 정면으로 마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고개를 살짝 돌려 마시는 풍습은 이러한 예법으로부터 나온 우리 모습이다.
이렇듯 술은, 우리 문화 속에서 많은 이들의 일상과 함께 하고 있다. 꽃이 피어서 마시고 꽃이 진다 마시며, 기쁜 일로 축하하며 마시고, 슬픈 일을 위로받으며 마신다. 과거 술을 지혜롭게 즐길 줄 알았던 선조들처럼 건강을 위한 약주로 예를 갖추며 마시기도 한다.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지만 좋은 이들과 함께 기분 좋게 마시는 술은 행복이고 위안이기도 할 것이다. 앵화우(櫻花雨)나리고 이화우(梨花雨)나리는 시절 나들이길 벗으로 우리 전통주가 어떨까. 멋들어진 병에 귀한 술과 봄빛을 함께 담아 세상사 잊고 기분 좋게 취해도 좋을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