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신세대들에게는 생경하겠지만 멀리 떨어져 사는 친인척보다 오히려 가까이 살면서 자주 만나는 이웃이 살아가는데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필자는 13대 할아버지를 마을 옆에 선산에 모시는 씨족마을에서 자랐다. 마을 뒤에 자리한 종중산에는 묘와 비석들이 층층이 있었고 명절에는 성묘에 한나절이 다 지나갔다. 아버지는 명절 때마다 묘와 비석에 대하여 설명하셨지만 한나절의 성묘는 어린 나에게는 그저 지루한 행사였다. 아버지의 경우만 해도 재종형제들이 수 십 명에 달했다. 그러니 나는 사촌, 당숙, 재종, 재당숙, 3종형제, 4종형제 등 요즘 신세대들은 거의 모를 인척 촌수를 수 없이 헤아리며 자랐다.
그러나 지금은 언감생심이다. 필자의 경우만 해도 직장을 따라 도시에 살면서 형제, 4촌 형제들과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그리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4촌 형제의 자녀들 간에는 재종의 관계인데 얼굴이나 알고 지내는지 모를 지경이다.
내가 살던 곳은 씨족 마을이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예전 우리가 살던 마을 형태의 공동체는 주변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야 했다. 이웃에 살면서 자주보고 작은 음식이라도 나누었으며, 동네 길을 같이 사용하고 담 너머로 옆집의 사정도 훤히 알고 지냈다. 어쩌다 다툼이 있더라도 이내 풀어냈으며 미운정도 정이어서 실제 사촌들보다 더 가까운 사이였으니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자연스런 환경이었다.
그런데 아파트생활을 하는 요즘 어떤가? 잦은 이사도 그렇거니와 이웃이 누군지 서로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고, 오히려 모르는 체 지내야 편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웃사촌이라는 말조차 이제는 생경할 정도다. 오히려 직장사촌이라는 신조어가 자연스럽게 이를 대체하는 것 같다.
해마다 내가 근무하는 과에서는 신입식구를 한두 명씩 선발한다. 합격하면 의국원이 되어 의국생활을 하게 된다. 드라마에서 가끔은 소개되어 조금씩은 짐작할 수 있겠지만 흔히 군 생활과 비슷한 전공의 시절이다. 이들은 몇 년 동안 좋으나 싫으나 하루 종일 부딪치며 지내야하고, 전공의 시절의 수련을 마치고도 한 의국원으로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며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전공의들은 항상 바로 위 전공의들에 전공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며 지식과 기술을 배우며 늘 옆에서 붙어 지내야 한다. 이렇게 바로 1년 선배의 전공의와는 거의 붙어서 살다보니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피하고 싶은 애증의 관계가 형성된다. 역설적인 것은 피하고 싶은 시어머니 같은 선배 전공의 신세가 후배 전공의에게는 바로 자신이라는 점이다. 결국 엄청난(?) 시집살이를 나도 겪고 물려주는 것이다. 그 사이에 수많은 고운 정 미운정이 들게 된다.
나는 입사시험 후 합격한 전공의에게 처음 하는 말이 항상 친인척보다 더 자주보고 가족처럼 지내야하니 이제부터는 한 식구가 되었다고 말한다. 전공의들도 처음 입사해서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지내다가 점점 그 의미를 알게 된다.
물론 사람의 관계는 단지 직장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결국 “OO사촌”이라는 말은 늘 가까이에서 지내며 부대끼는 사람들이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것은 내가 편하게 사는 방식일 것이며 내 주변을 편하게 하는 살아가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