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전북이 배출한 영화제 초청 감독들

영화 도시 전주의 명성을 이어갈 유망한 영화인들이 등장했다. 올 영화제에 초청된 윤인상( ‘빈방’), 김진아( ‘숨바꼭질’), 채한영( ‘선아의 방’), 금태경( ‘주성치와 함께라면’). 전북독립영화협회, 전주영상위원회, 전주영화제작소, 전북대 인문영상연구소 등이 진행하는 다양한 양성·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젊은 감독들이다.

 

△ 윤인상 감독 〈빈방〉 "여주인공의 심리, 지역 장소에 녹여내"

편집점을 잡지 못해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던 초짜가 일을 냈다. 첫 촬영작 〈빈방〉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것. 심사위원의 호평도 이어졌다고 하니 실력으로 얻은 큰 성과다.

 

“영화감독이 꿈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발을 딛게 된 건 대학 내 인문영상연구소 영화제작 워크숍을 통해서예요. 스태프, 배우도 전부 능숙하지 않았지만 의견을 나누면서 진짜 열심히 했는데 열정에 대한 격려인가 싶습니다.”

 

영화 〈빈방〉은 전북대 선·후배 사이자 영화계 동료인 채한영 감독이 쓴 시나리오를 윤인상(25) 감독이 연출한 것이다. 여자 주인공(은혜)이 장기간의 연애로 인해 사랑과 인간관계에 있어 권태기를 느끼는 과정과 심리를 담담하게 표현했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미장센(장면에 놓인 시각적 요소들). “은혜의 심리를 그가 찾아가는 장소들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인물의 대사와 행동이 많지 않고, 대부분 시선과 배경을 따라가는데요. 화면에 담긴 배경만으로 심리상태가 드러나야 했기 때문에 장소 선택이 중요했죠.” 화면은 전북대 동아리방과 신정문쪽 언덕 등 은혜의 주요 활동지에서 낯선 폐허로 향한다. 옛 공장을 재단장한 전주 팔복예술공장이다. 친숙한 지역을 배경으로 하지만 감독만의 시각과 언어를 녹여내 제3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내년에는 직접 쓴 시나리오를 연출하는 것이 목표다. 가장 친한 친구를 대상으로 한 우정 이야기다.

 

△채한영 감독 〈선아의 방〉 "다양한 해석 가능한 작품 만들고 싶다"

채한영(26) 감독은 2년 연속 전주국제영화제에 단편 영화를 걸었다. 첫 단편 〈사막 한 가운데서〉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제21회 인디포럼 등에서 상영됐다. 그의 두 번째 단편 〈선아의 방〉은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단편 부문 상영작으로 선정됐다.

 

채 감독은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재학생이다. 지난해는 전북독립영화협회 마스터와 함께하는 단편영화 제작 스쿨 6기 연출자로 선발돼 〈사막 한 가운데서〉를 연출했다. 올해는 전주영상위원회 ‘전주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을 통해 〈선아의 방〉을 만들었다.

 

〈선아의 방〉은 할머니를 여의고 혼자 파지를 주우며 사는 선아와 그런 선아에게 찾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마지막 장면은 사람이 연기하지만 로드킬 당한 고양이를 표현했다. 남겨진 고양이 새끼를 상상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정서·기억의 암유와 유사하다.

 

채 감독은 전주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한 뼘씩 성장하는 중이다. “첫 번째 작품으로 영화 현장의 분위기를 익혔고, 두 번째 작품으로 저의 개인적인 성향을 직시하게 됐어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배운다는 느낌이 강해요.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금태경 감독 〈주성치와 함께라면〉 "차기작은 전주와 호주 배경 촬영 예정"

“제 영화 속 주인공은 다 ‘찐따’(못난이라는 뜻의 속어)에요. 용기 내서 싸우지만 지거든요. 누구나 변화의 욕구는 있지만, 싸워도 바뀌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단지 수긍하면서 살아갈 뿐이죠.”

 

한국단편경쟁작 〈주성치와 함께라면〉의 금태경(31)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관통하는 정신에 대해 이같이 정의한다.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늘 진다. 이는 “현실과 싸웠을 때 이길 수 있을까?”라는 감독의 자문(自問) 결과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단호하다. “(시간이 지나도) 이기는 주인공은 없어요. 희망은 주고 싶지 않아요. 다만, 즐거움은 주고 싶어요. 저도 현실 속에서 늘 지고 있으니까요.”

 

그는 모아니면 도다. 전주 출신으로 전주 영생고를 졸업하고 전북대에 입학했지만 1학기 만에 자퇴했다. 군대를 전역한 후 청주대 영화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2012년 단편 〈스매싱〉을 시작으로 2013년 〈기억세탁소〉·〈호구〉, 2014년 〈빙신〉, 2015년 〈무직비디오〉 등 다수의 단편영화를 연출했다. 〈호구〉는 제18회 인디포럼과 제13회 전북독립영화제, 〈빙신〉은 제14회 전북독립영화제 등에서 상영됐다. 〈주성치와 함께라면〉은 전주영화제작소의 ‘전주 영화 후반제작지원 사업’ 선정작이기도 하다. 감독은 주인공을 중학생으로 설정했다. 등수가 매겨지는 중학교 때부터 모든 계급사회가 형성되고, 싸우지 않고 수긍하는 자세가 생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기작은 장편 영화다. 막일꾼 팀이 세계 막일꾼 대회에 나간다는 내용. 전주와 호주를 배경으로 촬영할 예정이다.

 

△ 김진아 감독 〈숨바꼭질〉 "영화로 부조리한 사회 바꾸고 싶어"

글만 써오던 사람이 이미지가 주는 매력에 빠졌다. 김진아(20) 감독은 언론·사회계열에 관심이 많아 주로 딱딱한 논설을 쓰던 학생이었다. 우연히 지난해 전북독립영화협회의 ‘마스터와 함께하는 전북단편영화 제작스쿨’에 참여해 영화〈숨바꼭질〉을 탄생시켰다.

 

“부조리를 비판하고 사회를 바꾸고 싶었는데 사람들에게 영상·이미지가 영향력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설적인 글만 쓰다가 영화를 만들려니 감성을 드러내는 부분이 힘들었죠. 머리 속에서는 그려지는데 감정과 심리를 대사로 표현하는 것은 다르더라고요.”

 

지난해 전북독립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한 〈숨바꼭질〉은 가정폭력을 주제로 한다. 여고생 소은에게 숨바꼭질은 추억이 될 수 없다. 아버지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엄마랑 숨바꼭질을 해야만 했던 소은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극은 정점에 이른다. “가정폭력이 나쁘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고요. 그렇다고 연민의 시선으로는 바라보지 않았으면 해요.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내 주변에 이런 사람,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있을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들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열아홉에 겪은 특별한 순간들은 진로도 바꿔놓았다. 영화인을 꿈꾸며 본격적인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고등학생인데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소리가 달갑게 들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고등학생 때 만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면서 “앞으로 많은 공부를 하며 더 좋은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