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으로 현실정치와 어느 정도 선을 긋기에 불교계 지도자들의 말씀에 더 울림이 있다. 금산사 회주인 월주 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도 우리들이지만 세상을 맑히는 것도 우리들 자신”이라며 “아무리 어렵더라도 서로 나누고 소통하면서 살아간다면 세상을 휩싸고 있는 어둠은 조금씩 걷힐 것”이라고 했다. 남원 실상사 주지로,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공동본부장을 맡고 있는 도법 스님은 “촛불 광장은 국민의 승리이자 평화의 승리”라며 “특히 ‘평화의 촛불’이 곧 부처님의 사상이고 정신이라는 점을 깨닫고 삶의 현장에서 실천을 다짐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제 만경 출신으로, 한국 불교계 대선사이며 대학자였던 탄허 스님(1913~1983)이 인터뷰를 했다면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스님의 대담 자료와 기고문, 강의록을 정리해 펴낸 <탄허록> 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불교인으로선 드물게 정치인의 자질과 역할,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탄허 스님은 국가지도자의 덕목을 ‘신뢰’라고 했다. 지도자가 신뢰받을 때 법과 영이 선다는 점에서다. 스님은 또 나라의 운명이 지도자의 심성에 달렸다고 보았으며, 탐심 있는 지도자를 경계하고 국민을 위한 철학을 갖추라고도 충고했다. 대중이 좋다고 따라서 좋아하고, 대중이 싫다고 따라서 싫어하는 소신없는 이들은 땅을 기는 개미보다 못한 사람이라고까지 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밤새워 고민하는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라고 충고했다. 먹을 게 적은 것 보다 공평하게 분배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며 공평한 분배를 역설하기도 했다. 탄허록>
탄허 스님이 지도자의 덕목만 강조한 것은 아니다. "인류의 구원은 새로 어떤 성인이 나타나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이 스스로 깨달아 청정한 본마음으로 돌아갈 때 가능하다. 부처라는 것은 오고감이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몸과 입과 뜻이 청정하면 부처가 머무르는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오신날’이 따로 없다. ”스님이 열반한지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새겨볼 이야기다. 김원용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