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아내의 가출로 화가 난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온 날이면 세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런 아버지는 외박도 잦았고 형제들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큰아버지 집에서 지냈다. 간암을 극복하지 못한 아버지는 지난 2월 끝내 세상을 떠났고, 형제들은 사회복지시설에 맡겨졌다.
이들 세 형제의 나이는 각각 열여섯 살, 열두 살, 열 살이다. 큰 형은 장애가 있어 다른 시설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고, 둘째와 막내는 같은 시설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어두운 가정환경 속에서 힘들게 지내온 형제지만 올해 5월은 희망의 달이 되고 있다.
지난해 전국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막내 오지원 군(14·고창중 1)이 2년 연속 소년체전 금메달 도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아픔과 슬픔을 잊기 위해서는 달리기가 유일한 탈출구였다”고 말하는 지원 군은 “지금보다 더 어린 나이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희망은 놓지 않았다”고 했다.
순창 출신인 지원 군은 초·중학교 모두 육상부에 들어갔다. 평범한 가정에서 운동하던 친구들과 출발이 달랐던 소년은 뭐든 악착같이 했다. 4년간 달리기 실력으로 육상대회를 휩쓸었다. 지난해에는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육상 800m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지원 군은 운동에만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원이가 초등학교 4학년 중간에 순창에서 고창으로 전학와 학교에서 첫 시험을 봤는데 우수상을 받아왔더라고요. ‘아 이상하다’ 싶어서 전에 다니던 학교에 물어봤는데 머리가 좋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거 뭐 한 방 맞은 기분이었죠.(웃음)”
지원이가 생활하고 있는 아동복지시설 ‘고창행복원’ 박지환 원장은 지난 2014년 7월 28일 지원 군과의 첫 만남을 그렇게 기억했다.
박 원장은 “지원이의 큰 형은 정신지체 3급 판정을 받아 아동보호치료시설인 고창 희망샘학교에 있고, 둘째와 막내가 이곳 행복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어렸을 적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현재 시설 생활을 통해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고 했다.
중학생 1학년인 지원 군은 신장이 178㎝로 또래보다 큰 편이다. 다리가 길고, 지구력과 힘이 좋아 400·800m 단거리에 성적이 좋은 편에 속한다.
지원 군의 육상 코치 배상수 씨는 “지난해 소년체전 때 지원이가 800m를 2분 11초에 끊었는데 이는 10년에 한 두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기록”이라며 “이달 말 열리는 전국소년체전에도 1600m 계주 전북 대표로 참가할 예정이어서 어떤 성적을 낼 지 기대되는 선수”라고 말했다.
이달 27일부터 나흘간 열릴 예정인 제46회 전국소년체전을 앞두고 지난 3일부터 경북 김천에서 전지훈련에 참가중인 지원 군은 6월 중순 열리는 전국꿈나무선발육상대회 금메달도 꿈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지원 군은 기회가 된다면 ‘단거리 육상 국가대표’로 세계대회에 출전하고 싶다고 한다. 그렇지만 장래희망은 선수생활을 계속하는 것보다 ‘고등학교 체육 교사’가 되고싶어 한다.
시간이 날 때는 또래 친구들처럼 축구와 컴퓨터 게임을 즐겨한다는 지원 군은 “슬픔이 벅차오를 때 눈물은 났지만, 달리고 또 달렸다”며 “공부를 열심히 해 대학 체육학과에 진학한 뒤 고등학교 체육교사가 돼 마음이 아픈 친구들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지원 군처럼 파란만장한 사연으로 전북지역 아동복지시설에 들어와 꿈을 찾아가는 아동들은 지난해 12월 기준 16개소 743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