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기억으로도 옛날에는 황사나 미세먼지 걱정이 그리 많지않았던 것 같다. 공기청정기라는 이름도 없었고 굳이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때도 황사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참을만했다.
이제 공기청정기는 가정의 필수품이 돼가고 있다. 주요 유통업체의 5월 1일~6일 공기청정기 등 가전제품 매출액이 전년에 비해 30% 가량 늘었다고 한다. 공기청정기 시장이 지난해 1조원에서 올해는 1조5000억원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광주공장은 공기청정기 생산량을 전년에 비해 2배로 늘렸다고 한다.
가난했던 옛 살림에서 TV를 사고, 냉장고를 들이고, 세탁기를 장만하고, 에어컨을 달게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 생활에 편익을 가져다주는 것들로 부(富)가 증가하고 잘 살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기청정기가 늘고 있다는 것은 왠지 불편하고 마뜩잖다. 삶의 수준을 높여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열악한 삶의 환경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오염도는 매우 심각한 정도다. 세계적으로도 악명이 높은 중국의 베이징보다도 안 좋은 날도 있다. 이로인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비용이 연간 10조원이라는 추산도 있다. 외출 자제에 따른 소비위축까지 합치면 그 비용이 더 증가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기청정기에도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아예 없는 집도 많지만, 2대, 3대씩 가지고 있는 가정도 적지 않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런 방비도 없이 무자비한 환경의 위협에 노출되는 것이 서럽겠지만, 공기청정기가 많으면 과연 행복할까? 그렇지는 못할 것이다. 공기청정기가 아무리 좋아도 예전의 맑고 깨끗했던 공기를 다시 맛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염된 공기로 인해 호흡기나 안과 계통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우리의 건강과 삶은 위협받을 것이다. 선진국 수준의 환경기준, 화력발전소 감축, 경유차량 폐차지원, 한중일 환경외교 및 협약체결 등 대선 후보들의 미세먼지 공약이 꼭 지켜지기를 다시 한번 바란다. 이성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