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각종 기념일…등골 휘는 가정의 달 5월

경조사 평균 51만6000원 써 / 가계지출비 중 가장 비중 커

영국 시인 T.S. 엘리엇은 자신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사는 직장인들에게는 5월이 잔인한 달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날 등 기념일이 이어지고,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 답게 결혼식은 물론 애사도 적지 않게 닥쳐 월급 생활을 하는 직장인 등 서민에게서 ‘5월은 허리 휘는 달’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 지경이다.

 

올해 취업한 박민재 씨(29)는 “취업하고 처음 맞는 어버이날이라 부모님께 선물과 저녁 식사 후 용돈도 드렸다”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이번 달에 지인들 결혼식이 많이 예정돼 있어 월급 대부분이 경조사비로 나가게 생겼다”고 울상지었다.

 

최근 첫째 아이 돌잔치를 한 서모 씨(31)도 연회장을 빌려 잔치를 크게 할까 생각했지만 가까운 가족들만 초청해 조촐하게 진행했다. 서 씨는 “지인들 경제 사정 뻔히 아는데 초대하는 것도 부담될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며 “나 같은 경우도 이번 달에만 지인들 결혼식 3개가 잡혀있어 아무래도 재정적 타격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늘어난 경조사로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최근 직장인 1387명과 구직자 699명을 대상으로 5월 예상 지출 비용을 설문 조사한 결과 각종 기념일 지출 비용은 평균 51만6000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서 나타난 39만2000원보다 30% 이상 많은 수치다.

 

같은 조사에서 기념일이 부담스러운 이유로 60여%가 ‘선물과 용돈 등 경제적 지출이 커서’라고 대답해 경조사비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는 이유로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을 꼽는다. 언제부터인가 경조사비로 5만 원은 기본이 됐고, 3만 원을 내는 경우는 보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또한, 주로 4~5월 봄철에 열리는 결혼식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5월이 1년 중 12월 다음으로 혼인신고 건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월 평균 혼인신고 건수는 2만8045건으로 12월(3만4119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서 경조사비 상한액을 10만 원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직장인들은 각종 기념일에 경조사까지 겹치는 5월 만만찮은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실제로 경조사비 등 지출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지만, 여전히 가계 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비소비지출 81만1700원 중 ‘가구 간 이전 지출’ 비용은 20만4000원으로 4분의 1을 차지했다. 가구 간 이전 지출은 실제 소비와 관련한 행동에 쓰이지 않은 지출로 부모나 자녀에게 주는 용돈과 경조사비 등이 포함되는데, 이 중 경조사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어려운 경제 상황에 경조사 참석 여부를 두고 머릿속으로 셈을 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인 윤모 씨(38)는 “경조사 연락이 한 달에도 수차례 오는 상황에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사람이 내 결혼식에는 왔었는지, 얼마나 친한지’ 계산하게 된다”며 “마땅히 축하하고 위로하면 좋겠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다 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씁쓸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