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헌책방에서 미래유산을 만나다

▲ 함한희 전북대 교수

며칠 전의 일이다. 어느 도시의 헌책방을 지나게 되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곳 중 가장 오래된 곳이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어서 호기심이 더 발동했다. 겉에서 보니 다 허물어질 듯 위태로운 건물이었는데 내부는 작은 생활사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옛날 상점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안채는 살림집이고, 도로로 면한 곳은 바깥채를 달아내어서 가게로 사용했던 흔적이 그대로 있었다. 책방은 아주 작지만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어서 가뜩이나 큰 내 몸이 더 뚱뚱해 보여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내부 풍경에 은근히 놀라웠다.

 

근현대 생활사 속 정겨운 이야기들

 

허리를 굽혀서 안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니 살림집이 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아이들이 오순도순 살았던 많은 이야기를 가진 가족들의 공간이 시간을 멈춘 채 남아 있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방이 비좁아지자 동네에서도 손꼽히는 솜씨를 가진 할아버지는 손주들의 방을 넓혀주었다는 이야기, 찌는 듯한 더운 여름날이면 마당에서 ‘뽐뿌’로 뽑아 올린 시원한 물로 목욕했던 이야기, 600장의 연탄을 한꺼번에 쟁일 수 있는 지하창고를 만든 이야기 등등.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일반 박물관과는 또 다른 느낌과 감회를 가지고 잠시 옛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조그마한 안방에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사용했던 살림살이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옛날 장롱과 찬장, 재봉틀과 다리미 그리고 아직도 소리가 나는 것이 신기한 오래된 라디오가 탁자 위에서 음악을 들려주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어린 시절로 돌아가니 아련한 추억들이 내 발을 붙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를 쉬이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니 과거도 현재도 흘러가도록 두자고 하면 우리 아이들은 지난 세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아이들은 더욱 더 모를 것이고. 그렇게 시대가 흐르다보면 후대에 누군가 나타나서 만들어내는 그런 역사로 후손들은 우리의 시대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 헌책방 안채에는 ‘600장의 연탄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지하창고를 할아버지가 손수 만드셨는데, 이는 며느리를 위해서 한 일이었다 ‘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어른들의 배려와 사랑이 담긴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연탄을 사용했었구나 그리고 그 연탄을 지하에 보관했었구나하는 정도로만 알고 끝내기에는 우리 세대의 경험은 무궁무진하다.

 

600장의 연탄을 재워두고 200포기 김장을 하면 부모님들은 겨울나기 준비를 끝내고 비로소 따뜻한 방안에 허리를 펴고 누울 수 있었다. 그러나 60장의 연탄 구입도 힘겨운 부모들도 적지 않았다. 또 불량연탄 때문에 하루에도 수차례 연탄과 씨름했던 이야기, 어디 그뿐이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는 슬픈 사연들도 많았다.

 

부모가 살아 온 이야기를 자녀에게

 

근현대 생활사 속에는 안타깝고 불운한 일도 많았고, 정겹고 사람냄새가 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바로 우리 주변에도 이같이 정겨운 이야기가 수없이 숨어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들의 이야기들을 남겨 두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 같다. 부모님들이 살아 온 시대의 이야기들을 자녀들에게 남겨주는 것이 바로 미래를 위한 유산만들기 작업이 아닐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