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모로 특별한 해다. 1937년 4월 13일 설정된 천주교 전주교구는 올해로 80주년을 맞았다. 특히 27년 만에 새 교구장이 탄생했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지난 13일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김선태 사도요한 주교 서품·착좌식’을 거행하고 목자의 앞날을 축하했다. 김선태 신임 천주교 전주교구장을 만나 소감과 종교와 삶에 대한 철학 등에 대해 들어봤다.
- 천주교 전주교구 설정 80주년이자 27년 만에 신임 교구장이 탄생했습니다. 교구장으로 임명받은 소감이 어떠신지요.
“교황대사관으로부터 후임 교구장으로 임명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저 자신이 부족하고, 그 직무를 수행하기에 부당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하느님께서 부족한 저를 필요로 하시는구나’라고 인간적인 일이 아닌 하느님이 원하시는 일로 생각하니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직무를 받아들였다고 제 능력이 갑자기 배양되는 건 아니므로 많은 신자의 도움과 협력, 기도가 필요합니다.”
- 이병호 주교님(전 전주교구장)과의 인연도 남다르시죠. 이 주교님의 당부 말씀이 궁금합니다.
“이병호 주교님은 제 신학교 은사님이셨습니다. 주교님은 사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범을 보였고 지주가 됐습니다. 후임자로 부족한 점이 많아 염려스럽다고 말씀드리니 어려운 일이 있지만, 하느님께서 그와 견주어 위로도 충분히 주시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구장 주교만이 누릴 수 있는 하느님의 위로가 있다’라는 말씀을 분명히 해주셨습니다.”
- 교구장 임명 전까지의 삶을 되돌아봤을 때 아쉬운 점이 있으신가요.
“어려운 처지나 딱한 사정을 지닌 신자들을 제 시간적·물리적인 한계로 다 돌봐드리지 못해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 개 성당을 담당해 활동하는 것도 힘이 들어 역부족이었는데, 큰 교구를 맡는다는 게 저로서는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신 김희중 대주교님이 착좌식에서 ‘주교 되는 날만 영광이고 다음날부터는 십자가’라는 말씀을 하셨죠. 실제 그러하신가요.
“임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를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기까지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수락한 뒤에는 하느님께 저 자신을 다 내맡겼기 때문에 마음이 편했습니다. 영광스럽다는 건 제 차원이 아닌 사람들의 시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사목 표어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루카복음 10장 37절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는 사제서품 성구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모든 걸 빼앗기고 얻어맞아서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데, 지나가던 사제가 피해 도망갔습니다. 두 번째 사람도 피해 도망갔습니다. 앞선 두 사람은 모두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이 상처를 치유하고, 자기 노새에 그를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정신적·물리적으로 상처 입은 사람을 도외시하지 말고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사랑을 베풀라는 뜻입니다. 주교가 된 뒤 되돌아보니 그 삶을 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여생 동안 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마음에서 그 표어를 계속 정하게 됐습니다.”
- 최근에는 번역서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라〉를 출간했지요.
“이 책의 근본 내용은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상처 줄 수 없다’ 입니다. 내가 상처를 받는다면 내가 나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받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요지입니다. 예를 들어 주식 투자를 했다가 돈을 많이 잃으면 돈 잃은 것 때문에 고통받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상처받는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그 사람의 돈에 대한 가치관과 집착으로 인해 상처받은 것입니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나의 그릇된 가치관이나 표상, 관념, 개념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올바른 표상과 관념을 가져야만 우리가 상처를 덜 받는다고 말합니다.”
- 세상 속에서 교회와 신앙인이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왜 존재하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신앙인의 신앙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세상으로 투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인이 세상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면 세속화돼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인은 세상을 위해 일하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교회에 속하면서도 세상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비동일성과 관계성. 이 맥락을 명백하게 선 긋고 의식해야 합니다. 또 신앙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교구장 주교가 할 일도 고통당하는 사람을 위해 함께 울어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 종교인의 사회 참여, 정치적인 발언에 대한 논란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성직자가 종교인으로서 사회를 밝게 비추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빛과 소금의 역할이 각각의 시각에 따라 정치적 개입 또는 적절한 처사로 읽힙니다. 그런데 분명한 점은 사회에 참여하는 종교인은 항상 자신이 믿는 종교 정신, 즉 복음의 빛으로 식별하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에 간섭한다거나 특정 정파의 이익을 위한 건 아닙니다. 공동선을 위해 참여하고 협력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 선과 악, 진보와 보수, 빈과 부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세상 역사가 시작된 이후 항상 선과 악, 좌측과 우측이 존재했습니다. 리영희 교수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처럼 한쪽 날개로는 불안정합니다. 균형 잡힌 사회를 위해서는 우측의 생각과 좌측의 생각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 자기편에서 자신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큰 모순이 있습니다. 나와 네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분열된 상황 속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가장 큰 원칙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할 때 대화가 시작됩니다.”
- 중점을 둔 계획이 있으신가요.
“성경의 핵심 내용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고 목표입니다. 비전도 사랑 목표도 사랑입니다. 사랑의 큰 특성 중 하나는 공동체의 일치와 화합입니다. 신부들이 먼저 하나 되어야 신자들이 하나 된 삶을 살고, 신자들이 하나 된 삶을 살 때 그걸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먼저 내려놓고 낮춰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자기 자신을 내려놓거나 희생하는 것이 부족하고, 그런 점에서 종교인·신앙인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 천주교 신자와 전북도민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삶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모두 행복을 바라며 살지만, 실제로는 행복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돈을 더 많이 가져야, 명예를 더 많이 누려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복은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이 가진 부와 명예, 권력을 내려놓고 부족한 사람에게 나눠주면 행복합니다. 각자 서 있는 위치에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행한다면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 [김선태 주교는] 스스로 선택한 길 "잘맞는 옷 입은듯"
김선태 주교(56)는 1961년 9월 익산 성치마을에서 5남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성치마을은 천주교 박해시대에 박해를 피해 교우들이 만든 교우촌으로 김 주교의 집안도 하루의 시작과 끝을 새벽기도와 저녁기도로 채우는 신실한 신앙 생활을 했다. 김 주교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는 꼭 사제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소신학교(성신중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김 주교는 고등학교 시절, 주변의 권유가 아닌 자신의 자아와 의지에 입각해 사제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김 주교는 “신앙에 젖은 삶을 어렸을 때부터 살아왔기 때문에 (사제 서품이) 당연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 길 외에 다른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자연스러웠다. 아주 잘 맞는 옷을 입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회상했다.
이후 1983년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 학사, 1989년 광주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해 1월 전주교구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전주 전동·둔율동본당 보좌를 거쳐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스위스 프리부르대에서 기초신학을 공부했다. 2001~2003년, 2006~2009년 두 번에 걸쳐 전주가톨릭신학원장을 맡았다. 전주 솔내·화산동·연지동본당 주임을 역임하고 2016년 2월부터 삼천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해왔다. 2017년 3월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제8대 전주교구장에 임명됐다.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라〉, 〈자기 자신 잘 대하기〉 등 10여 권의 번역서를 내고 전주교구 계간지 〈쌍백합〉과 주보 〈숲정이〉에 10년 가까이 묵상글을 연재했다. 주변 사람들은 김 주교를 탁월한 학자이자 성실한 사목자로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