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잊고 지내는 것이 어디 한 두 가지랴. 지난해 가을부터 세 번의 계절이 바뀌는 지금까지 쉴 새 없이 우리를 흔들었고 절망케 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는 여전히 기억한다.
답답하고 지겨웠던 그 길고 긴 겨울을 보내면서 우리는 도대체 여태까지 무엇을 움켜쥐었고 무엇을 찾아냈던 것일까?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수런거림을 잠시 밀쳐두고 생각을 모아 본다.
몇 주 전 일이다. 딸아이가 운전하던 차에 못 보던 흠집이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물어 보았지만 본인도 모르고 있었다. 딸아이는 새 차에 흠집이 생겼으니 누군가 주차해둔 차에 남기고간 상처라며 블랙박스를 뒤져서 범인을 잡고야 말겠다고 씩씩거렸다. ‘그래 한번 찾아봐’ 라고 대꾸하면서도 나는 내심 ‘그냥 지나가는 거지 뭐’하는 심정이었다.
다음 주 딸이 집에 왔을 때 범인을 찾았는지 물어보았다. 딸은 블랙박스에 찍힌 차와 사람 중에 용의 차량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또 한 주일이 지나서 물어보자 심드렁했다. 그리고 한 주일을 더 지난 다음에는 흠집은 딸아이와 나의 관심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필자도 주차 중에 작은 흠집도 만들고 다른 차가 내차에 작은 흠집을 만드는 경우를 흔히 경험한다. 물론 큰 흠집을 내면 수리를 주고받지만 대개는 그냥 넘어간다. 어차피 우리는 이런 식으로 알게 혹은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아간다.
다시 몇 년 전 일이다. 우리가족묘는 고향의 작은 밭의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묘를 제외한 밭에 농사를 짓던 고향 어르신 한 분이 해마다 정리를 해 주셨고 나는 그 분에게 얼마간의 비용도 드려 왔었다.
그런데 늘 그렇게 지내던 고마운 분이 연로하여 하늘나라에 가시고, 그의 사위가 그 일을 대신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벌초비용을 좀 더 달라는 것이다. 나는 밭도 일구고 얼마간의 비용도 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달리 방법도 없고 또 조금 양보한다고 생각하고 좀 더 드렸다.
물론 만족스런 액수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당사자가 별다른 말이 없었기에 만족스럽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 한 두 해가 지나면서 내가 양보해서 벌초비용문제가 해결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사위 분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 정도로 양보해서 해결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내 입장에서만 판단했었다는 점이 부끄러웠고 그 분이 양보했다는 것이 고마웠다.
세 번의 계절을 지내오면서 우리가 확인했던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옳고 정당하다는 착각이다. 우리들이 영문도 모르고 지악스럽게 움켜쥐었던 것을 엿보게 된 것도 지난 가을부터였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나만 옳고 정당하다며 남을 찍어 눌러야 직성이 풀린다고 믿었던가. 소위 주류 기득권 사회계층이 움켜쥐었던 확증 편향성(confidential bias) 심리라는 것은 기실 자신만이 옳고 정당하다는 병이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포기한 병 말이다. 그 병증은 우리 사회를 갈 때까지 몰아갔었다.
내가 살아가는 데는 나 자신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해와 양보가 깔려 있음에도 여태껏 그것을 망각했던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것, 나도 남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잃어버렸지만 이제 비로소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