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에 가면 6·25 전쟁과 월남전 등에서 전사한 국군장병들의 이름이 적힌 명비(名碑)가 있다. 20여만 명의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는 회랑을 걷자면 마음이 자못 숙연해진다. 아직도 발굴되지 못해 이름 석 자 새기지 못한 전사자들을 포함하면 수많은 사람이 이름도 없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사라졌다. 매년 6월 호국보훈의 달이면 거론되는 유명한 애국지사들이 있지만, 비석 속 수많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민중은 사회구조적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역사의 길목에서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몽골의 침입에 강화도로 몸을 숨긴 임금과 달리 침입자들을 온몸으로 막아낸 것도, 임진왜란 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에 맞서 싸운 이도 이름 없는 백성이었다. 우리 역사에서 주목하지 않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결과물은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보면 구한말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운동은 1910년 한일합방 이후 국내외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당시 백성의 목숨을 초개같이 내던진 자발적인 구국운동은 일제 강점 36년을 끝내고 광복을 이끌어 낸 계기가 되었다.
평범한 이들 속에 흐르는 특별한 애국정신은 시대를 이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해야 하지만,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것이 병역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수호하고자 성실하게 병역을 이행하고 있다. 지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사건 때 다수의 병사들이 전역을 연기하면서 최전선을 사수했고,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청년들의 지원행렬에 해병대 모집 경쟁률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살아있는 역사가 아닐까 싶다.
최근에는 해외이주, 질병 등의 사유로 병역이 면제되어 병역의무 대상자가 아님에도 자진해 입영하는 청년들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에 병무청에서는 특별한 나라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자진병역이행자’를 응원하고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먼저 해외 영주권자임에도 당당히 현역 복무를 자원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입영을 희망하는 시기를 우선하여 반영해 주고 이들을 격려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는 체중, 시력 등으로 병역이 면제되거나 보충역에 편입되어 현역복무가 어려운 의무자들의 질병 치유를 도와줌으로써 현역입영을 가능토록 지원하는 ‘슈퍼 굳건이 프로젝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몸과 시간을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젊은 청춘들이 많이 있다.
오늘날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은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한다.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에서 나라사랑 정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청년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진정한 자랑이다. 나라가 어려울 때 조국을 지킨 것은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백성들이었듯,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땀을 흘리고 있는 청춘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기록되는 시대가 펼쳐지길 바란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노래한 나태주 시인의 『풀꽃』의 한 구절이 새삼 떠오른다. 그의 시처럼 6월 한 달, 평범함을 품고 있는 이 땅의 청춘들을 애정이 어린 눈길로 오랫동안 바라봐 주고 진심으로 격려하는 우리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