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야사 복원사업’을 정책과제에 포함할 것을 지시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문 대통령이 왜 “뜬금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면서 그리 긴급한 현안도 아닌 가야사 복원을 주요 국정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꺼냈을까. 그것도 ‘호영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는 명분까지 내세웠다. 가야사의 복원사업에 호남을 그저 들러리로 세운 명분용은 아닌지 의구심도 든다.
실제 가야사 복원사업은 금관가야(김해)·대가야(고령)·아라가야(함안) 등 역사의 중심지였던 경남의 오랜 숙원이다. 신라사에 가려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가야사 연구와 복원에 경남은 목말라 했다. 박근혜 정부가 ‘신라 왕경(王京)복원사업사업’을 추진해 가야사 복원에 대한 경남의 상대적 소외감은 더 커졌다. 민주당 경남선대위가 이번 대선에서 가야문화 발굴 복원사업을 주요 공약으로 걸었고, 문 대통령이 여기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야사 복원에서 호남은 들러리일 뿐인가. 30년간 전북지역 가야사를 연구한 곽장근 군산대 교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오히려 전북의 가야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았다. 경남의 경우 가야사 발굴·복원작업이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반면, 전북에서는 많은 가야고총이 발견됐음에도 발굴이 이뤄지지 않아 더 많은 여지가 있단다. 곽 교수는 남원 운봉과 장수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고총이 350개, 제철 유적 150개로 ‘가야사의 숲’을 이룬다고 했다.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고 하지만, 가야의 중심지라고 하는 김해와 고령에서 발견된 제철 유적은 없다. 고대 국가에서 첨단 하이테크라고 할 제철 생산지가 전북 동부지역에 집중된 사실만으로도 이 지역이 가야의 변방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여기에 전북 동부지역 봉수로의 최종 종착지가 장수로 밝혀져 가야의 중심세력이 존재했다고 추정할 수 있단다.
그럼에도 가야사를 말할 때 왜 경남권만 떠올려질까. 곽 교수는 ‘가야 사랑’의 차이라고 했다. 가야사 연구자 대부분이 영남권 연고 학자들이다. 발굴 역시 경남권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고분 중의 고분’이라고 할 전북 동부권의 고총이 발굴되면 ‘장수 가야’ ‘운봉 가야’라는 가야국가가 나올 수도 있다. 가야사 기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유물과 유적이 가야사를 새로 쓸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의 ‘뜬금없는 이야기’가 전북 동부지역을 가야사의 중심으로 불러올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