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의 식당 ‘밥하지마’에서 매일 국밥 100그릇을 푸던 이근영 씨가 오랜만에 앞치마를 벗고 단상 앞에 앉았다. 15일 인문강좌 ‘전라북도 잡학다식’이 열린 최명희문학관에서 ‘국밥집 문화 기획자’가 꺼낸 첫 마디는 “자신의 몸에 대해 얼만큼 알고계십니까”였다.
20여 년간 전주시립극단 단무장, 제17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정책보좌관 등으로 활동했던 이 씨는 1년 6개월 전 무리한 활동 탓인지 건강에 악신호가 찾아왔다. 건강과 가족 상황 등을 고려해 군산으로 귀향했다. 새로 시작한 일은 뜻밖에도 밥집이었다. 낯선 일을 하며 익숙함에 가려져 있던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됐다.
이 씨는 “자신의 상태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매일 많은 사람과 마주하면서 내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가 경력증명서만 열 두개거든요. 그땐 잦은 이직이 사회구조와 예산 탓이라고 여겼는데 식당을 하면서 근본적인 원인인 내 성향을 깨닫게 됐죠. 내 약점을 인정하고 나니 신기하게 몸도 견딜만해졌어요. 억누르고 있던 게 풀린 거죠.”
남편이자 동료 문화기획자인 이준호 씨가 후반부 공동 강연자로 나서면서 이야기는 지역 문화 현장으로 흘러갔다.
이근영 씨는 전북 문화 인력·사업이 전주에서 타 시·군으로 분산되고 시·군간 네트워크가 촘촘해져, 문화권이 넓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문화가 중앙에 집중돼 있다고 하는데, 전주가 ‘전북의 서울’과 다름없다”면서 “전주는 인력이 포화상태라 능력이 있어도 더 능력 있는 사람 덕에 빛을 못 보는데 이들이 다른 시·군으로 가면 얼마든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넓고 탄탄해진 문화권은 ‘전주(또는 전북)발 문화 분권의 토대가 된다. 이들은 “문화체육관광부 등 중앙 부처가 너무 거대해졌다”면서 “이번 정부에서 문화 분권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자원이 풍부한 전주(또는 전북)이 주도하는 형식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 자치단체 행정 지원도 뒷받침 돼야 한다. 전주 외 나머지 시·군은 새로운 사람을 받고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할 기본 구조가 미약한 실정이라는 것. 전주·익산·완주를 제외하고 공적 사업을 끌어올 수 있는 문화재단도 없다. 지역문화진흥법에 의해 문화재단 설립은 필수고, 문화 전문 인력이 한 명만 있어도 달라질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한편 (사)문화연구 창(대표 최기우)이 기획한 인문강좌 ‘잡학다식’은 9월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