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사람 사는 世相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일제가 남긴 상흔과 잔재 모두 청산하고 광정해야

▲ 전일환 전 전주대 부총장

일제의 침탈로 인해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압박과 설음에서 해방이 되고, 칠흑 같은 캄캄한 암흑에서 찬란한 아침을 찾아 광복이 된지 올해로 72주년을 맞는다. 난 해방둥이지만 호적엔 생년월일이 실제와 다르게 등재되었다. 외조부는 어머니를 정신(挺身)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나이 15세에 우리 집에 시집을 보냈고, 아버진 보국(輔國)대에 나가지 않으려고 피해 다니다가 왜경에 잡혀 남양군도에 끌려간 후 해방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진 전쟁 중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했는데 1년이 다간 이듬 해 여름 갑작스런 귀국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실로 일제의 36년간의 상흔은 일흔 두해가 되어도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그들이 낳은 질곡(桎梏)의 고통과 악재(惡材)가 한둘이 아니다. 보험의 약관도 글자는 우리말이지만 아무리 읽어 보아도 알 수 없는 일본식 한자들이다. 우리나라 기초헌법도 그렇고 , 건축이나 모든 법칙과 조례들이 다 그러하니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의 세상살이가 더욱 어려워지고 사람의 삶의 질도 말이 아니다.

 

경남 안의의 의병장 전성범 장군은 1911년 2월 1심에서 사형선고, 3월 대구 공소원(控訴院)의 2심상고도 기각된 채 동년 4월에 서둘러 사형 당한 종증조부의 공적비가 거연정 근처에 덩그마니 서 있다. 이승만 시절 국가보훈처에 애국지사신청서를 냈으나, 강도, 방화, 살인범이 무슨 애국지사냐며 비아냥댔지만 이후 전두환 때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된 뒤, 1994년에 직손에게 국가유공자증을 주었다. 2015년에 종중에서 증빙자료를 첨부하여 의병장의 순국진상재심청원서를 냈으나 현 보훈법에 의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요즘 전국 각 지역에서 일반주거지역에 무분별한 다세대주택건설의 난립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 2층의 단독주거지역에 4, 5층의 고층건물을 일제가 남긴 건축법에 따라 이웃 담과 신축물의 이격(離隔)거리 조건만을 따지고 자연이 인간에게 허여한 일조(日照)권이나 조망(眺望)권, 천공(天空)권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차별 허가해준 결과다. 구청과 시청, 도청에서는 그런 모법이 불법은 아니라며 손을 놓고 있는데도 해당관청의 시의회나 도의회, 심지어 국회조차도 강 건너 불구경 신세다. 겨우 2005년도에 고등법원이 구미각국들처럼 주민들의 이러한 자연권을 최초로 인정하는 판례를 남긴 이래, 전국 각지의 법원 등에서 수십 건의 판례를 줄줄이 내고 있으니 그나마 천행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촛불민심에 따라 새 정부가 들어서서 사람다운 사람, 나라다운 나라를 복원한다며 시공간을 넘나들며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본디 ‘사람’이란 ‘살다’라는 말의 용언인 어간 ‘살’로부터 어원(語源)된 말이다. 사람, 삶, 살이, 살림 등이 다그러하니 이 세상에 이보다 우선되고 앞세울 게 그 무엇이랴? 모든 미학의 첫걸음이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인문학적인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만 한다.

 

어떤 이념이나 돈도, 그 어떤 물질도 이보다 귀하고 값진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소학의 첫 구절에도 ‘하늘과 땅 사이에 오로지 사람이 가장 귀하다’라며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중 인간의 존귀성을 역설한 게 아닐까싶다. 이제 일제가 남긴 상흔과 잔재를 모두 청산하고 광정(匡正)하여 진정 사람 사는 세상(世相)을 만들어가자. 이 일만이 맑고 밝은 내일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필요불가결한 책무이다,

 

△전일환 전 부총장은 문학박사로 전주대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이며 석정문학사업회·미당문학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조선가사문학론> <옛시 옛노래의 이해> 와 수필집 <그말 한마디> 등이 있다.